독일인이 한국 공무직 박차고 나온 이유

엘레나를 처음 발견한 건 해외문화홍보원에서 운영하는 ‘코리아넷’ 사이트에서다. 직원이라고 했다. 다국어로 한국 소식을 전하는 곳이니 외국인이 일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 그래도 궁금했다. 독일인 한국 공무원(공무직)이라니! 찾아보니 한국에서 많은 일을 하고 있었다. 독일어 교재도 쓰고, 모델 일도 하고, 유튜브 채널에서 ‘외국인’ 역할을 맡기도 한다. 한국에서 ‘밥벌이’하고 있는 독일인의 삶은 어떨까.

서울 합정역에서 엘레나를 만났다. 더이상 한국 공무원이 아니었다. 사표를 쓰고 나와 자유로운 프리랜서가 됐다고 한다. 궁금한게 더 많아졌다. 엘레나의 한국 직장 생활과 밥벌이 여정, 함께 들어보자.


[Interviewee Profile]

엘레나 쿠비츠키
Elena Kubitzki 

1993년생
베를린자유대 한국학 학사
고려대 국제학부 석사
2020 – 2021 해외문화홍보원 코리아넷 독일어 담당자
현재 프리랜서로 활동중


한국이 직업이 된 독일인, 그 시작

-한국과는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2011년 김나지움(고등학교)때 교환학생으로 2주간 한국에 머물면서 처음 인연을 맺었다. 이후 베를린자유대에서 한국학을 공부했고 2017년부터 지금까지 쭉 한국에서 살고 있다.

-고등학교 때 교환 프로그램은 어떻게 오게 됐나? 원래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었나?

외국에 사는 친척들이 있어서 여러 문화에 관심이 많은 편이었다. 선생님이 프로그램을 알려줬는데 호기심이 생겼다. 학교에서는 한국전쟁 말고 한국에 대해 가르쳐 주는게 없었다. 그런데 2주간 경험이 너무 좋았다. 매력적이었고, 이곳에 오래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점이 좋았나? 

한국 음식! 타향살이에 있어 음식이 입에 맞지 않으면 괴롭다. 일상이 불행해지니까. 하지만 나는 한식이 너무 맛있었고, 행복했다. 빵과 엄마 음식을 빼고 독일 음식을 그리워하지 않았다. 

-2주 경험만으로 한국학을 전공으로 선택한건가?

맞다. 하지만 그냥 한 건 아니다. 한국에 독일회사가 있고, 독일에도 한국회사가 있다. 독일 사람이 필요할 수 있겠다, 문화 교류 측면에서 일자리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한국학 학사를 하면서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왔고, 고려대 국제학부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교환학생과 장기체류는 다른 문제다. 학업 후 한국 or 독일, 고민이 많았을텐데. 

몇년 간을 한국에 투자했고, 한국어도 열심히 배웠는데 독일로 돌아간다면? 그동안의 노력이 아까울 것 같았다. 또 23살까지 독일에서 살았지만 그 이후에는 대부분 한국에서 삶을 보냈다. 어느덧 독일하면 어린 시절이, 한국하면 성인으로서의 삶이 떠올려졌다. 자연스레 한국 또한 내 고향으로 느껴졌다. 나의 미래 또한 한국에서 계속 사는 거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지금 다르게 느낀 점이 있다면?

그땐 외국인이 많지 않았다. 함께 사진을 찍자는 사람도 있어 신기하면서도 재미있었다. 지금은 꽤 많은 외국인들이 산다. 사진 찍자고 말을 걸진 않지만, 한국말을 하는 외국인에 대해선 여전히 놀라워한다. 얼마 전에도 병원에서 한국어로 증상을 말한 적이 있는데 의사 선생님이 내 증상보단 ‘한국말 진짜 잘하네~’하며 내 한국어 실력에 더 주목하는 것 같았다. 이제 한국말 잘하는 외국인도 많다!

Elena Kubitzki ⓒDahee Seo/dokbab

한국 정부기관에서 독일어 홍보 업무

-그동안 많은 일을 했다. 먼저 한국 정부기관에서 일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어떤 업무였나?

지난해 1년 간 코리아넷에서 정직원으로 일했다. 독일어로 기사를 번역하고, 영상콘텐츠를 만들고, 독일어 명예기자단을 관리했다.

-취업 과정이 궁금하다. 

2015년부터 코리아넷 명예기자단으로 활동했다. 스카웃 된거는 아니다(웃음). 관심이 많아 해외문화홍보원 홈페이지를 보다가 우연히 독일어 담당자 휴직자 대체 공고를 봤다. ‘어, 이건 해야한다. 나를 위한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지원하고, 면접 보고 일하게 됐다.

-인터뷰 때는 어떤 질문을 받았나?

만들고 싶은 콘텐츠의 주제, 비자 관련 질문 외에도 한국 문화 혹은 한국 직장 문화가 있는 사무실에서 문제가 생길 경우 해결책 등을 물어봤다. 이 질문에 ‘한국과 독일 두 사무실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동료들끼리 문제가 생기면 대화로 풀 것 같다.’고 답했다. 비자는 당시 학생비자였고, 취업 이후 취업비자로 바꿀 수 있었다.

-하루 일과가 어땠는지?

9시 출근하고, 팀장님이 그날 작성해야 하는 기사 아이템 알려준다. 누가 어떤 기사 쓸지 정하고, 취재하고, 기사 작성을 안하는 사람은 명예기자단을 관리한다. 그렇게 기사를 쓰고, 2시부터 번역 업무를 한다. 기사 2-3건 정도 번역을 하고, 영상 촬영을 하기도 한다.

-국제적인 팀이겠다. 팀 구성이 어떻게 되는지?

홈페이지가 9개 언어로 운영된다. 팀원은 총 30여명 정도 되고, 그 중 외국인은 4명이었다. 독일어 외에 중국어, 아랍어, 스페인어 담당 외국인 직원이 있었다.

코리아넷 독일어 페이지 ⓒhttps://german.korea.net

-일을 그만둔 이유는? 

1년 간 다양한 경험도 많이 하고, 좋은 사람도 만나서 좋았는데, 정말 일이 너무 많았다. 원래는 번역만 했는데 팀이 통합되며 기사도 쓰고, 관리도 하고 업무 량이 많아졌다. 물론 공무직이어서 그렇지만 하는 일에 비해 보상이 적다고 생각했다. 이만큼 열심히 했는데… ! 이제는 좀 더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서 나왔다.

-독일인으로서 한국의 직장 문화, 이해하기 어려웠던 부분은? 

개인적으로 시간 낭비하는 것을 싫어하는데, 시간을 효과적으로 쓰지 않는 느낌이 들 때가 있었다. 예를 들어 영상 프로젝트를 할 경우 기획부터 준비, 촬영, 편집까지 쭉 끝낼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잘 안됐다. 중간에 내용이 바뀔 때도 있고, 그러면 보고하고 확정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하던 작업을 멈추고 다른 일을 하기도 했다. 

-야근도 많이 했나?

종종 했다. 특히 주간회의가 있을 때 회의가 길어져서 항상 야근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독일에서는 최대한 빨리 일을 해야 내 시간이 길어진다는 마인드가 있다. 한국에서는 종종 어차피 야근하니까 지금 빡세게 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있는 것 같다. 낮에 열심히 하고 바로바로 빨리 처리하면 야근 안할텐데, 그런 생각이 들때면 좀 답답했던 것 같다.

-한국 회사의 장점을 꼽는다면?

서로를 가족처럼 느끼고 친하게 지내는 게 나는 좋았다. 독일에 있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일과 개인 생활, 인간 관계 등이 철저히 분리된 듯했다. 여기선 같이 밥 먹고, 생일 챙겨주고, 고민 들어주고. 대부분 여성이라서 그런지 자매가 여럿 생긴 느낌이었다. 우리 팀의 경우 외국에 살다 온 사람이 많아서인지 다들 오픈마인드라 잘 통했던 것 같다.

Elena Kubitzki ⓒDahee Seo/dokbab

퇴사 후 새로운 시도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나?

그만둔 지 얼마 되지 않았고, 바로 오피스 라이프로 돌아가기 싫어서(웃음) 일단은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다. 번역도 하고, 영상도 찍는다. 오늘도 인터뷰 마치고 영상 촬영을 하러 간다.

-한국에 있는 독일회사나 한국회사는 생각해본 적이 없는지?

독일 회사라면 업무 환경, 분위기가 좀 더 잘 맞을 것 같다. 하지만 한국에 살면서 한국어를 할 수 있으니 한국 회사에 들어갈 기회가 있다면 좋겠다. 그런데 아직 자신이 없다.

-모델이나 유튜브 출연은 어떻게 시작했는지?

처음에는 모델 매니지먼트 회사, 방송국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연락을 했다. 처음에는 사기꾼인가 했다. 독일에서 내 외모에 대한 환상 같은 건 없었기 때문에 야한 방송은 아닐까 의심했다(웃음). 다행히 아니었고, 멀쩡한 방송이었다. 그때 외국인이 한국어 잘하면 쓸모가 있구나, 이걸 활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프로필을 만들어 에이전시에 보냈고, 꾸준히 연락이 와서 시간이 될 때마다 일하고 있다.

-유튜브도 찍고, 다른 채널에도 출연한다. 

토론 방송이나 문화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즐겁다. 우연히 MBC 유튜브 촬영을 했는데 비정상회담에 출연했던 외국인들과 한국 교수님과 학교폭력에 대해 토론했다. 즐거운 경험이었다. 외국인 스타인데 친절했고, 똑같은 사람이더라(웃음). 다니엘 린데만은 아직 못 만났는데, 만나보고 싶다. ‘어썸코리아’라는 유튜브 채널에도 ‘독일인’으로 출연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을 계속 하고 싶다.

-독독독 독일어 학원이랑 독일어 교재도 냈다.

2015년도에 명지대에서 교환학생을 할 때 페북으로 원어민 회화강사를 구한다는 글을 보고 지원했다. 그때 인연으로 친구가 되어 책도 함께 쓰고, 영상도 찍고 있다. 당시에는 충무로 작은 사무실이었는데 매년 눈에 띄게 많이 성장했고 좋은 콘텐츠도 많이 만들고 있다. 퇴사 후에 시간이 자유로워져서 다시 함께 콘텐츠를 만들 것 같다.

독일어 교육 콘텐츠 회사 독독독TV와 함께하는 엘레나

독일인들의 한국 진출, 혹은 이주

-한국학과가 커지고 있지만, 한국학과 졸업 후 일자리가 많지는 않는 것 같다. 어떤가?

개인적으로 외교 분야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러면 석사도 해야 하고, 마음이 급하지 않아 당시엔 고민이 크지 않았다. 그런데 동기들 중에는 확실히 무얼 해야할지 몰라서 아예 다른 분야로 가거나, 경영학을 다시 공부해 회사에 취직하기도 한다. 물론 대학교에서 계속 석박사 과정을 밟는 친구들도 있다. 

-왜 그럴까?

한국학을 전공해도 한국어가 부족하다. 독일에만 계속 있으면 한국회사에 취직하기가 어렵다. 언어적으로 문법이나 어휘를 배우지만, 자연스럽게 말하는 법, 사무실 어휘는 배울 수 없다. 그 나라 가서 살아야 배울 수 있는데, 그럴 기회가 적은게 문제인 거 같다. 독일 내 한국회사도 현지 부서별로는 경영, 마케팅 등 전공자를 뽑고, 한국어가 필요한 일에는 독일에 사는 한국인을 선호한다.

-독일에서 한국학을 하는 친구들에게 한국 취업을 권하고 싶은가?

일단 한국에서 한 번 살아보라고 조언하고 싶다. 한국 드라마 보고, 한국 오는 게 꿈인 친구가 있었는데 한국어를 잘 모르고 왔다. 소통이 안 되고 힘들어서 결국 실망하고 돌아갔다. 일단 살아보고, 현실적으로 내게 어떤 기회가 있는지, 나와 잘 맞는지 확인했으면 좋겠다.

-정서적으로 문화적으로 독일과 한국이 닮은 점이 있을까? 

한국, 독일 사람 모두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다. 할 때는 열심히, 진지하게 일한다. 가족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비슷하다. 독일은 일찍 독립하고, 한국은 늦게 독립하는 편이지만 모두 가족을 가까운 존재로 여기는 것 같다.

-독일 사는 한국인들에게 독일 외국인청이 유명하다. 한국의 외국인사무소는 어떤가.

이건 나라마다 같은 것 같다. 최악이다(웃음). 처음에 비자를 받지 못할 뻔 했다. 내가 알고 있는 기준과 다르고, 전화로 물어봤을 때 말해주지 않는 게 있었다. ‘다른 방법 없냐’고 물어봤는데 ‘없다. 그냥 가’라는 식으로 말했다. 나중에 SNS에 올렸더니 외국인 친구가 알려줬다. 베를린자유대를 졸업했으면 비자를 받을 수 있었던 거다. 그래서 서류를 준비해 갔는데, 대답은 똑같았다. 그래서 ‘민원 어떻게 낼 수 있냐’고 물었더니 갑자기 태도가 바뀌었고 바로 처리됐다. 해피엔딩이었지만 마음이 좋지 않았다.
(여기서 인터뷰어와 인터뷰이는 곧 한마음이 됐다)

-어쩜, 어느 나라에서나 외국인들 경험 다 똑같다.

한국에도 외국인들 사이에 그런게 있다. ‘어디 동네 외국인사무소 3번 카운터 가면 안된다. 거기는 피해라’ 이런 말들(웃음).

-얼마 전에 F2 비자를 받았다고 들었다.

영주권 이전에 받을 수 있는 거주 비자다. 그동안의 비자는 학교나 직장과 연결되어 있었는데 F2비자는 퇴직이나 실직을 하더라도 체류가 가능하고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이 비자를 받으려면 점수 포인트 80점을 모아야 하는데, 학사 및 석사 등의 학력,  한국어 실력, 소득 등으로 점수를 받고, 독일이 한국전쟁 의료지원국이라서 추가 점수를 받았다.

-앞으로 계획은?

코리아넷 하면서 좋은 경험을 많이 했다. MC나 아나운서를 했을 때 가장 즐거웠던 것 같다.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계속 도전하고 싶다. 내 유튜브도 열심히 꾸리고, 다른 채널 촬영도 열심히 하고, 한국에서 외국인 대표 중 하나가 되고 싶다.


한국에서 프리랜서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엘레나와 인터뷰를 하며 ‘맞어, 맞어’하며 몇번이나 손바닥을 쳤는지 모른다. 한국인이든 독일인이든 외국에서 일하는 ‘외노자’로서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보다 가난한 나라에서 와서 험한 일을 하는 노동자와 비교할 바 아니지만, 타지에서 밥벌이를 한다는 일 그 자체는 누구에게나, 어디에서나 녹록지 않다.

국뽕 충만한 한국 사회에서 ‘한국말 잘하는 독일인’으로 엘레나는 자신의 위치와 강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어 잘하네~’라는 말을 그만 듣고 싶다고 했지만, 또 한 번 언급할 수밖에 없다. 한시간 반 가량 이어진 인터뷰는 모두 한국어로 진행했다. 독일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한국 정부 기관에서 일했다가, 이제는 자유로운 직업인으로 더 멀리 나아갈 엘레나의 미래를 진심으로 응원해본다. 이 응원은 곧 독일에서 밥벌이하는 우리 모두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다. D

인터뷰: 독밥
정리: 이유진
사진: 서다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