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새 정부 정책보기 (1) 문화정책

독일 총선 이후 두 달 만인 11월 24일, 독일 새 정부가 출범했다. 앙겔라 메르켈이 이끌던 기민/기사당은 16년 만에 정권을 내주었고, 진보 정당인 사민당과 녹색당, 자민당 3당이 연정 정부를 구성했다. 새 정부의 연정 합의문 제목은 ‘더 많은 진보를 감행하다(Mehr Fortschritt wagen): 자유와 공정, 지속가능성을 위한 연맹’이다. 이 합의문은 연정을 이룬 3당이 향후 정부를 함께 운영하며 합의한 가치와 정책의 향방, 목표를 제시하고 있다. 분야별로 주요 골자를 살펴본다.

독일 새 정부의 연정합의문 표지

독일 새 정부,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 ‘다양성’

한국에서는 존재를 살펴볼 수 없는 대선 문화정책. 독일은 문화를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민주주의답게 이끄는 가장 주요한 요소로 본다.

‘우리는 문화의 다양성과 자유를 보장함으로써 조직과 표현방식에 상관없이, 클래식부터 만화책까지, 독일어 방언부터 음반가게까지 모든 사람들과 함께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연정 합의서의 문화/미디어 정책 부문의 첫 문장이다. 이전 정부와 마찬가지로 문화의 다양성을 문화정책의 목표로 삼고 있다.

▲ 예술가 처우 개선

문화적 다양성은 이러한 문화를 창조하는 예술가들로부터 나온다. 인간에 대한 것을 최우선으로 삼는다. 독일 문화부는 ‘예술가들은 사회적, 경제적으로 더욱 보호받아야 한다’며 ‘예술가보험(Künstlersozialkass)를 재정적으로 더욱 안전하게 만들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예술가 정책 관련) 공평하고 다양한 심사자와 기관, 임기 제한을 두겠다고 강조했다. 예술가나 예술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지원할 때 이를 결정하는 주체를 더욱 공정하게 세우겠다는 뜻이다. 

새 정부는 ‘디지털 문화 역량 센터’를 통해 문화 행위자들을 상담하고, 교육을 통해 자격을 부여한다.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연방정부와 주정부, 지역 사회, 문화와 사회적 행위자들 간의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문화 총회의(Plenum der Kultur)’를 설치할 예정이다.

▲ 새출발 프로그램(Neustart-Programme) 지속

독일은 코로나 팬데믹 이후 침체된 문화예술 분야를 위해 새출발 프로그램이라는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었다. 새 정부도 이러한 정책을 계속 잇는다. 새 문화부는 또한 자유로운 문화 씬의 구조가 더욱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정 정부는 또한 농촌 지역과 문화 인프라가 약한 지역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동시에 수도인 베를린에서의 문화 지원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특히 독일 연방정부 차원의 가치가 있는 문화재와 주요 박물관, 미술관 등을 관리하는 프러이센 문화재단(Stiftung Preußischer Kulturbesitz)의 쇄신 작업도 이뤄질 예정이다.

▲ 기억문화에 대한 인정

독일 연방정부 문화부에서 가장 중시하는 부문 중 하나인 기억문화 또한 이어진다. 나치와 분단 역사를 겪은 독일에서 기억문화는 특히 민주주의에 필수적인 요소로 인식된다. 새 문화부 또한 ‘기억문화는 민주주의와 공동의 미래를 위한 길’이라며 나치 제국주의의 약탈 예술품을 반환할 때 청구권 시효는 제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제국주의 약탈품은 시효 없이 본 주인을 찾아 돌려주는 작업을 잇겠다는 의미다. 새 정부는 또한 식민주의 약탈품 반환도 지원해야 하며, 식민주의에 대한 교육과 기억 공간의 컨셉도 개발되어야 한다. 동시에 이주사회에 대한 역사 전달과 소통에도 힘쓸 예정이다.

▲ 자유롭고 독립적인 미디어 보장

미디어 정책 분야에서는 민영이든 공영이든 자유롭고 독립적인 미디어에서 나오는 다원성과 다양성을 지킨다. 특히 최근 여러 취재 현장에서 위협받고 있는 언론인들의 안전을 보장하며, 혐오 발언과 가짜뉴스에 대응한다. 미디어의 디지털 전환 과정에서의 도전은 바로 플랫폼과 미디어 중개자(Intermediäre), 즉 여러 소셜미디어 플랫폼에 대한 공정한 규제를 통해 나아가야 하며 공정한 소통의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독일 새 정부의 문화미디어청장으로 임명된 클라우디아 로트 ⓒBundesregierung/Kristian Schuller

독일 새 문화부 장관, 첫 행선지는 나치 수용소

독일의 새로운 문화부 장관은 클라우디아 로트(Claudia Roth). 녹색당 소속으로 문화, 환경, 인권 부문에서 주로 활동하던 정치인이다. 독일 울름 출생으로 뮌헨에서 연극학을 전공했다. 이후 극작가 및 독일 유명한 록밴드의 매니저로도 일해 문화계에 대한 이해가 높다. 1987년부터 당시 서독지역의 녹색당 당원으로 활동했고, 유럽의회, 슈뢰더 정부, 연방의회 등을 거치며 정치인으로서의 커리어를 쌓았다. 2013, 2017, 2021년 연속으로 연방의회 부의장직을 맡았다. 주요 활동 분야는 인권, 국제 개발, 문화 및 교육정책이었다. 2021년 12월 8일 문화 및 미디어청장으로 임명됐다.

신임 문화부 장관의 첫 행보에서 독일 연방정부 문화부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 로트 장관은 임명 후 바로 다음날인 12월 10일, 나치 강제수용소 중 하나인 부헨발트 수용소를 찾았고, 홀로코스트 추모관을 잇따라 방문했다. 로트는 “기억문화는 내게 가장 중요한 일이다. 그래서 임기 첫날 나치 수용소인 이곳을 찾았다. 이는 미래를 기억하는 것이며,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를 알고 인식하는 것은 반유대주의와 소수민족혐오, 인종주의, 반인권에 적극적으로 대항하는 것을 의미한다. 바로 지금, 반민주주의가 혐오와 선동으로 퍼져갈 때 목소리를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음 행선지는 슈투트가르트. 주정부 문화 관계자들과의 만남을 통해 문화 분야의 다양성을 다시 한 번 강조한다. 이어 슈투트가르트 린덴 박물관에서 진행중인 ‘무거운 유산(Schwieriges Erbe)’전을 관람했다. 린덴 박물관은 독일 식민지였던 베냉 청동유물을 포함 전 세계 유물 16만 점을 소유하고 있는 독일 최대 민속학 박물관이다. 이번 전시회는 1882년부터 1940년까지 박물관과 독일 식민지 간의 관계를 보여주고 있으며, 최근 독일이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식민주의 담론의 일환이다. 현재 독일 사회의 여러 문제점들, 극우주의와 인종주의, 반이주민, 소수자에 대한 혐오, 불신, 가짜뉴스. 가짜 정보로 자신만의 왜곡된 세계관을 확대하는 이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다양성을 인정하는 민주주의며 민주주의를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소통과 문화라는 점을 독일은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