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릴라는 혁신일까

다국적 이민자들이 많고 전세계 청년들이 모이는 베를린은 스타트업의 테스트베드다. 최근에는 코로나 팬데믹 시기를 타고 배달 플랫폼이 급성장하고 있는데, 밀키트를 비롯해 음식 배달, 식료품 배달까지 푸드 관련 플랫폼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식료품 배달 플랫폼 고릴라와 플링크의 옥외 광고 @dokbab

가장 핫한 스타트업, 고릴라

지금 독일에서 가장 핫한 스타트업인 고릴라(Gorillas). 식료품 배달 플랫폼으로 터키 출신인 카안 쥐메르(Kağan Sümer)가 독일 밀키트 기업 헬로우프레쉬 COO 출신 요르그 카트너(Jörg Kattner)를 영입해 지난해 5월 창업했다. 이후 2억 8천만 유로 이상의 투자를 받아 독일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스타트업 중 하나로 꼽힌다. 1년 만에 기업가치 10만 달러 이상의 유니콘 기업이 됐다. 현재 독일뿐 아니라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주요 도시 26곳에서 물류센터는 100여 개를 운영하고 있다.

‘당신보다 더 빠르다’. 고릴라의 모토다. 앱으로 주문을 마치면 10분 만에 문 앞까지 배달해 준다. 도시 곳곳에 자리잡은 물류센터에서 소위 ‘피커(Picker)’가 상품을 담는다. 물류센터라고 하지만 주택가 중간에 자리잡은 작은 슈퍼마켓 정도의 규모다. 전기 자전거를 탄 라이더는 장바구니 가방을 등에 메고 질주한다. 사과 한 개도 주문할 수 있다. 배달료는 기본 1.8유로.

“당신보다 빠르다”
10분 만에 식료품 배달

정말 10분 만에 올까? 어떻게 오지? 궁금증에 직접 주문해봤다. 사람이 직접 장바구니 가방을 메고 오기 때문에 무게 제한은 있다. 병맥주는 6병 이상 구입할 수가 없다. 간단히 몇 가지를 넣어서 주문 완료. 라이더의 팁으로 1유로를 더해 결제했다. 15분이 걸린다고 한다. 

라이더가 어느 위치에 있는지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물류거점이 자전거로 7분 거리에 있다. 주문 내역을 빠르게 담아 출발하면 10분 내 배달도 가능한 거리다. 특수 전기 자전거로 일반 자전거보다 좀 더 수월하고 빠르게 운전이 가능하다. 처음 안내한 시간에 딱 맞춰 라이더가 도착한다. 라이더는 독일어가 서툰 인도 사람이었다. 사진에서 보던 것 보다 가방의 크기가 상당히 크다. 시급은 10.5유로, 라이더 팁으로 결제된 금액은 모두 받는다고 한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있는 고릴라 물류센터. 윗층 거주자가 ‘고릴라는 꺼져라’는 현수막을 걸어놨다 ⓒdokbab

고릴라는 매일 시위중

빠른 성장 속도 만큼 진통도 크다. 특히 노동자의 권리가 강하고 반자본주의 성향이 강한 베를린에서 혁신을 내세운 스타트업과 긱 노동자들의 갈등이 표면화되고 있다. 지금 고릴라에 대한 기사 대부분이 노동자들의 시위 소식와 처우 문제에 대한 것이다.

고릴라 라이더들은 지난 2월 ‘고릴라 워커 콜렉티브(Gorillas Workers Collective)’를 만들었다. 지난 6월 28일에는 물류 창고 입구를 막고 노동자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등 크고 작은 시위를 계속 개최하고 있다. 이들은 날씨에 맞는 적정 유니폼 제공, 밀린 임금 지급, 정규직 고용 안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노동자 처우뿐만이 아니다. 주택가 한 가운데 자리잡은 물류센터로 인한 갈등도 있다. 10분 배달을 현실화하기 위해 대부분의 물류센터가 주택가 밀집지역에 자리하고 있다. 물류센터의 규모가 작기 때문에 물품 입고가 수시로 이뤄진다. 물류로 인한 소음, 그리고 대기하는 배달 노동자들이 일으키는 소음때문에 지역 주민들의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베를린 판코우 지역에서는 지역 정치권이 나서 문제제기를 하고 있고, 구청 측이 시정을 요구했다.

공용공간을 어지럽힌다는 문제제기가 있은 후 깔끔해진 물류창고 주변 ⓒdokbab

고릴라에 대한 부정적인 뉴스가 발생하자 경쟁사들은 이를 놓치지 않고 이용한다. 현재 고릴라 이외에 플링크(Flink), 게티어(Getir)가 식료품 배달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공격적인 홍보 마케팅을 수행하고 있다. 플링크 측은 독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고릴라 라이더들의 시위 이후에 이용자가 늘었다면서 고릴라보다 더 나은 노동조건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터키 회사인 게티어는 고릴라 노동자들의 첫 시위가 열린 직후 베를린에서 서비스를 시작했다. 회사 소개에는 고릴라와의 차별점이 강조되어 있다. ‘우리는 우리 라이더들을 존중으로 대합니다. 채용부터 장비, 팁 제공까지 게티어는 공정한 고용주입니다.’ 고릴라 측의 최근 논란을 의도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독일 베를린의 대표적인 식료품 배달 플랫폼 ⓒ앱스토어 캡쳐
게티어의 홍보 문구. 배달 노동자들을 정당하게 대우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getir 웹사이트

“‘쿨’한 업무환경이 노동권을 대신하지 않는다”

쿠팡과 마켓컬리 등 새벽배송을 컨셉으로 ‘혁신’이라고 평가 받던 한국 플랫폼들은 노동자의 처우 문제가 뒤늦게 표면화됐다. 베를린은 시작부터 논란이다. 특히 이곳 노동자들은 독일어가 서툴고 독일법에 밝지 않은 비EU 시민들이 많다. 사회적 법적 보호가 뒷받침되어야 하지만, 현상은 늘 제도보다 빠르다.  

베를린 구의원인 칸젤 키칠테페(Cansel Kiziltepe)는 《타게스슈피겔》 기고문에서 ‘스타트업의 ‘쿨’한 업무환경이 노동권을 대체할 수 없다’며 ‘정치권과 노조, 법률도 빠르게 성장하는 디지털 산업에 따라가야 한다. 긱노동자, 클라우드노동자, 협업 노동자 등 다양한 형태의 노동 환경이 보호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움직임이 베를린 스타트업의 혁신과 도전을 막는다는 우려도 있다. 모빌리티 플랫폼이 한창 생겨날 때 이런 논쟁은 없었다. 하지만 ‘노동자’들이 드러나는 순간, 베를린은 지킬 것은 지킨다. 고릴라 이후의 플랫폼은 노동에 대한 존중과 함께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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