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프리랜서] 베를린에서 의류 브랜드 런칭한 박소진 디자이너
독일하면 떠오르는, 스스로도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는 슬픈 ‘편견’ 중 하나, ‘패션 테러리스트’. 사실 그렇게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 남들의 시선에 억압받지 않고 ‘내가 좋고, 내가 편한대로’ 입고 다닐 뿐이다. 하지만 옷을 만들거나 옷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독일은 그렇게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영국이나 프랑스, 이탈리아로 눈을 돌리는 것이 좋다. 그런 독일에서 자신만의 브랜드를 런칭한 패션 디자이너가 있다. 독일 베를린 에스모드(Esmod) 패션학교를 졸업한 이후 ‘어셈블드 하프 (Assembled Half)’를 런칭한 박소진 디자이너다.
왜 베를린이었을까?
왜 아직도 베를린일까?
박소진 디자이너를 찾아 물어보기로 했다.
‘제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있었는데 그 곳의 시작이 베를린이었어요. 패션과 아트가 접목한 방식이었죠. 런던같은 곳은 분위기가 이미 포화상태 같았어요. 베를린이 신선하고 예술가들도 많은 도시잖아요. 또 생활비도 다른 도시보다는 저렴했고요.’
처음엔 베를린에서 살아보고 싶었다. 패션 분야로만 보면 베를린은 사실 런던, 뉴욕과 같은 곳 보다는 매력적인 곳은 아니다. 패션 트렌드가 느리고 상업적 측면에서 옷이 잘 팔리는 도시도 아니다. 여느 예술가들이 그랬던 것처럼 자유와 예술의 도시, 베를린 그 자체의 매력이 컸다. 박소진 디자이너가 전 세계에 흩어진 캠퍼스 중 베를린에 있는 에스모드 패션학교를 선택한 이유였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패션 공부도 처음하는 건데 용어부터 하나하나 독일어로 시작해야 했거든요. 함께 공부하던 친구들도 처음엔 무심했죠.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어요. ‘나는 어떤 것을 하는 사람이다’라는 걸 보여줘야 했어요. 나만의 강점과 장점을 만드는 거죠. 그러면 먼저 다가와 관심을 가지고 작품에 대해 물어보고, 조언을 구하기도 하더라고요.’
언어의 장벽에 부딪히며 애쓰고 애쓴 결과가 좋았다. 2014년 직접 그린 일러스트를 접목한 졸업 작품이 1등상을 받았고, 덕분에 독일 다큐멘터리와 여러 패션 매거진에도 소개됐다. 디자이너 작품을 모아 전시하는 갤러리 측에서 먼저 박소진 디자이너의 옷을 전시하고 싶다고 제안을 했다. 그렇게 들어간 컨셉 스토어가 ‘비키니 베를린’에 있는 Studio183이다. 베를린 동물원역 바로 앞에 있는 ‘비키니 베를린’은 분단시절 서독의 도심지 프로젝트 중 하나로 건설된 건물이다. 현재는 복합 쇼핑몰로 독특하고 고급스러운 디자이너 매장이 모여있다. 비키니 베를린의 2층 Studio 183에 들어서면 박소진 디자이너의 옷을 찾을 수 있다.
상업적인 패션 분야와 예술 그 사이, 아시아적 배경과 머물고 있는 곳 그 사이, 반반이 만난 그 사이, 어셈블드 하프의 의미다. 의도적으로 ‘아시아적 특징’을 살리지는 않지만 영감의 많은 부분이 그곳에서 온다.
‘단추, 지퍼같은 걸 쓰지 않고 사이즈도 큰 사이즈 하나로 실루엣과 전체적인 모양에 중점을 둡니다. 끈으로 묶어서 실루엣을 변형할 수 있는 이런 특징이 동양적, 한국적 미에서 오는 거 같아요.’
모든 옷은 한땀한땀 직접 만든다. 천을 떼오는 것부터 디자인, 재봉, 일러스트까지 박소진 디자이너의 손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옷에 직접 그림을 그리는 경우는 같은 옷이 나올 수도 없다. 세상에서 딱 한 벌 있는 옷이다.
‘옷에 프린트를 하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더라고요. 그래서 옷 위에 직접 그려볼까 하는 생각으로 시작을 했죠. 시간은 들지만 하나밖에 없는 옷이 되는거죠.’
가격대는 만만치 않다. 상의 티셔츠는 200유로대를 넘나들고, 코트는 1000유로에서 3000유로까지 간다. 그래도 베를린에서 작품을 계속할 만큼 수익이 이어진다. 베를린에서 만들었지만, 고객은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온 이들이 많다고 한다.
‘옷을 사가는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 물어봤는데 독일 사람은 아니라고 하더라고요(웃음). 대부분 영국이나 미국, 베를린에 여행을 와서 들른 분들이 많다고 이야기를 들었어요.’
전세계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베를린에서 고객을 굳이 독일 사람으로만 한정할 필요가 없다. 박소진 디자이너가 베를린에서 계속 옷을 만들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베를린이었기에 그의 옷도 나올 수 있었다.
‘제가 만약 한국에서 공부를 했다면 이런 방식의 작업은 나오지 않았을 거에요. 한국에서는 아무래도 트렌드가 빠르고 실용주의적 디자인을 더 중시하는 것 같아요. 베를린에서는 조금 더 폭 넓고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었던 것 같고, 특히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작업은 여기가 더 맞는 느낌이 들어요.’
박소진 디자이너는 지금 다음 콜렉션을 준비하고 있다. 옷 뿐만 아니라 그림, 설치가 어우러진 총체적인 공간을 만들 계획이다. 옷만 선보이는 것보다는 더 자유롭고 재미있는 플랫폼을 추구하고 있다. 언젠간 어셈블드 하프의 이름으로 매장을 내려고 한다.
그래서 패션을 하고 싶은 이들에게 베를린은 여전히 유효한 곳일까?
‘비지니스적 측면에서는 사실 베를린을 추천하고 싶지 않아요. 그런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트렌디한 서울이 더 낫습니다. 베를린이 ‘패션의 도시’라는 건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웃음). 단지 베를린이 힙하다는 생각으로만 오면 힘들 것 같아요. 좀 느리게, 어떤 걸 집중력 있게 해 보고싶다 하면 이곳을 추천합니다.’ D
*본 기사는 한국국제문화교류진흥원에도 발행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