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저먼와인셀렉션 황만수 | 독일 와인 유통계의 마이스터가 되다

독일, 하면 맥주다. 하지만 독일에 좀 살았다면 독일 와인 이야기를 빼놓지 않을 것이다. 특히 독일이 원산지인 리슬링(Riesling) 와인은 독일인들의 와인 ‘부심’을 살려주는 대표적인 품종. 최근에는 우리나라에도 꽤 많이 알려졌다. 샤르도네, 소비뇽블랑과 함께 화이트 와인의 저변을 넓이고 있는 대표 와인이다.

한국에서도 매력적인 독일 리슬링을 맛볼 수 있게된 데는 이사람의 공이 크다. 한국인 최초로 독일 공인 와인 컨설턴트가 된 황만수 GWS 대표다. 그는 독일 리슬링 와이너리와 한국의 와인 수입사 사이를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 그 누구도 독일의 리슬링을 모르던 시절. 그는 어쩌다 독일 리슬링에 빠져, 어쩌다 직업까지 가지게 되었을까.


1967년생
한국 한양대학교 독어독문과 학사
독일 트리어대학교 독문학, 철학 전공
2013년 저먼와인셀렉션 설립
어쩌다 트리어, 어쩌다 와인
독일 리슬링과의 인연

 

-독어독문학을 전공하고 독일 트리어에서 유학을 시작했다.
1992년 9월에 트리어 대학에 입학해, 지금까지도 살고 있다. 트리어에 갔다는 것 자체가 운명이었다. 입학 허가를 가장 먼저 받은 곳이었고, 와 보니 와인이 있었다. -와인과의 첫 만남은?
트리어를 가로지르는 모젤 강변으로 와이너리가 잘 발달해 있다. 유학시절 일본 친구와 함께 이 지역의 가장 흔한 여가 활동 중 하나인 와이너리를 방문했다. 피스포트(Piesport) 마을의 로이셔 하르트 와이너리(Weingut Reuscher-Haart)였다. 하르트 가문의 후손인 한 노장이 직접 만든 10종의 와인을 꺼내놓고 이야기를 들려줬다.

하나하나 설명을 들으면서 테이스팅을 하는데 새로운 세계를 발견한 느낌이었다. 이를 계기로 와인에 관심을 갖게 됐고 다양한 와인을 맛봤다. 그러다 와인 세미나에도 참석하게 됐는데, 어느날 내가 와인에 깊숙이 빠져들었음을 깨달았다.

-이전에도 술을 즐겼나?
사실 싫어했다. 알콜이 내 몸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술을 마시고 나서 좋은 기억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트리어에서도 처음에는 친구들과 와인을 막 마시면서 다음날 힘들겠네 생각했다. 그런데 아침에 일어났는데 개운했다(!) 이건 뭐지? (웃음) -독어독문 유학을 와서 ‘와인’을 진로로 잡는 건 다른 문제다.
원래는 공부를 마치고 학계로 돌아갈 계획이었다. 하지만 당시 한국에서 언어 관련 학과가 통폐합되고 여러가지 상황이 어려워졌다. 일단 한국에 돌아가기보단 독일에 머물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봤다. 그러고보니 그동안 와인과 관련해 쌓아 놓은 것들이 꽤 많더라. 처음부터 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식으로 와인 직종 관련 과정을 시작했다.

 

모젤 강변에 펼쳐진 와인밭

소믈리에는 아는데…
독일 공인 와인 컨설턴트란?

 

-독일 와인 업계에서 일할 수 있는 직종은?
와인 양조를 제외하고 관련 직종은 일단 ‘소믈리에’로 통칭되는데, 세부적으로는 요식업에 진출하는 분야(Fachrichting Gastro), 유통 및 무역분야(Fachrichtugn Handle)로 나뉜다. 흔히 떠올리는 요식업계의 소믈리에는 레스토랑에서 최적의 와인을 추천하고 관련 조언을 하는 하는 와인전문가다. 하지만 서비스 뿐만 아니라 관리도 담당해 와인뿐 아니라 회계, 물류도 배운다. 유통 및 무역분야를 전문으로 하는 ‘컨설턴트’와는 90% 같고 10% 다르다. 와인이 교육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은 같지만 컨설턴트는 무역과 관련된 실용적인 지식을 더 배우는 반면에, 요식업계 소믈리에는 컨설턴트가 다루지 않는 다른 음료에 대한 부분에 대한 내용이 추가된다. -독일 상공회의소(IHK)의 와인 컨설턴트 자격증을 가지고 있다. 자격증 및 수료 시스템은?
독일의 와인 관련 공인 시험은 두가지다. 요식업계는 소믈리에, 유통 및 무역 분야는 컨설턴트다. 독일상공회의소가 주관하는데, 내가 교육을 받았을 당시에는 2년간 일주일에 반 정도 가서 이론을 배우고 2년간 실습했다. 그런 후 필기, 실기, 구두시험을 치른다. 나는 2005년 시작해 2009년도에 마쳤다. -실습은 어디서 했나?
2년 간의 실습 과정은 만만치 않았다. 와인 학교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와이너리에서 일한 적도 없어 실습 자리를 알아보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인맥을 총동원해 비쉐플리헤 바인귀테(Bischöfliche Weingüte), 볼스(Vols)라는 와이너리에서 실습을 할 수 있었다. 빗자루질도 하고 탱크도 닦고, 와이너리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경험했다. 참고로, 무역 분야는 꼭 와이너리가 아니라 와인 무역회사에서 일해도 된다. -독일 상공회의소(IHK) 직업훈련 자격증이 필수인가? 자격의 효용성은?
필수는 아니다. 독일인의 경우 일찍부터 식당에서 일한 경험으로도 충분하다. 하지만 외국인의 경우는 다르지 않겠나. 자격증이 있어야 좀 더 인정받는다. 처음에 외국인을 보면 ‘저 사람은 뭐지?’라고 생각한다. 부정적인 차원은 아니고 자연스러운 시각이다. 그러다 명함을 교환하고, 명함에 자격이 써 있으면 ‘아~’하면서 좀 더 인정해주는 분위기다. 같은 자격증을 가지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네트워크도 형성된다. 물론 역으로 한국에서 일하는데도 독일 공인 자격증이 증표가 된다. 적어도 나에겐 필요한 일이었다. -그러니까 이 분야의 ‘마이스터(Meister, 장인)’ 인가?
그렇다. 다른 직종에서는 마이스터라는 타이틀을 사용한다. 와인 분야에도 생산 쪽은 퀴퍼마이스터(Küfermeister), 켈러마이스터(Kellermeister), 빈처마이스터(Vinzermeister)가 있다. 유통 쪽 마이스터인 셈이다 . -해당 자격증으로 어떤 업무를 하고 있는지?
자격증을 따면 와인 업계에 취업하거나 사업을 하게 된다. 나는 독일 와인을 유통하는 개인 사업 이외에도 컨설턴트 및 소믈리에로 여러 품평회 심사위원으로 나간다. 독일 와인은 시중에 유통되기 위해 국가의 공식 검증을 거쳐 검사 번호를 받는데, 이 검사 과정에서 심사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 심사위원으로 활동하려면 시험을 보고 등록도 해야한다. 또 세계 최대 규모 와인품평회인 베를린 와인트로피(Berliner Wein Trophy)도 매년 참가하고 있다. -마이스터 취득 이후 개인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한국에 독일 리슬링 와인을 수입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만 사실 좀 막막한 상태였다. 2009년 마이스터가 되고 난후 진로를 고민하던 중 2010년 초반 트리어의 유명 와이너리인 SMW(Saar-Mosel-Winzersekt) 슈미트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국 출장 길에 동행하자고. 그 때 한국에서 와인 수입사를 만났는데, 그게 계기가 됐다. 독일로 돌아와서 바로 사업자 등록을 했다. -비자 받는데 모젤와인협회장님까지 나섰다고 들었다.
사업 비자 받는 데만 2년이 걸렸다. 학생으로 있다가 보통 취업 준비를 하고 취업 비자를 받는데 사업자를 내는 경우가 당시 흔치 않았다. 비즈니스 플랜을 내고, 상공회의소에 갔다. 트리어는 와인이 중요한 산업이어서 IHK에서도 담당부서가 따로 있었고 당당히 OK를 받았다. 그리고 외국인청으로 갔는데 한마디로 ‘잘못 걸렸다’. 이런 저런 이유로 비자 발급을 계속 미뤘다. 이 소식을 들은 SMW 와이너리의 대표이자 모젤 와인협회장인 슈미트 회장이 동행했고, 비자를 바로 받을 수 있었다.

 

베를린 와인 트로피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한 황만수 와인 컨설턴트 ⓒ독밥/서다희

 


한국과 독인 간 와인 중개자
저먼와인셀렉션(GWS)

 

-저먼와인셀렉션(GWS) 회사 소개를 간단히 한다면?
독일 와인을 전문적으로 수출한다. 95%는 한국에, 나머지는 중국으로 수출한다. 한국 내 수입사들이 있는데 이들과 독일 와인 생산자 사이 중간 역할을 하는 게 주 업무다. -어떤 와인을 소개하는가?
현재 독일의 20여 개 소규모 와이너리의 제품을 수출한다. 한국 내 거래하는 수입사는 6곳 정도다. 공장식으로 운영되는 대형 와이너리는 중간자 역할이 필요없다. 양과 가격으로 승부하면 되니까. 저먼와인셀렉션은 독일 와인 중에서도 품질 좋고 철학이 있는 개인 와이너리를 소개한다. 독일 내에서도 톱 클래스로 꼽히는 와이너리로, 와인 자체 품질은 물론 한국인의 입맛과 식문화를 고려한 와인을 엄선한다. -독일 와인, 한국에선 인지도는?
지금도 여전히 낮다. 한국에선 기본적으로 레드 와인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 수입량에 따른 랭킹을 보면 2010년과 별 차이가 없어보인다. 독일 와인 수입량은 7위 혹은 8위 정도다. 그래도 10년 전 레드와인과 화이트와인의 비율이 9:1이었다면 지금은 7:3, 6:4로 변하고 있다. 또 소비자의 취향이 다양해지고 또 고급화되고 있다. 이러한 시장의 변화에 독일의 화이트 와인은 충분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한국과 독일 사이에서 일한다. 양국 간 일하며 어려운 점이 있다면?
시간 개념이 다르다. 예를 들어 한국에선 2주면 주문 및 발송에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독일에선 그게 어렵지 않나. 독일 파트너에겐 시간을 넉넉히 주어야 한다. 처음에는 서로 다른 시간 개념을 설득하고 중재하는 게 큰 일이었다. 오랜 시간이 걸렸다. – 독일 파트너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점은?
이곳은 시골 농촌이다. 한국의 트렌드 변화와 속도를 상상도 못한다. 특히 변화보다 전통을 고수하는 연세 지긋한 와인메이커들을 설득하는 건 쉽지 않다. 한국에선 패키지 디자인에 대한 요구가 많은데 이런 분들은 ‘맛만 있으면 되지’라는 입장이다. 그러면 ‘맞는데요.. 보기도 좋으면 더 좋잖아요.’ 하며 천천히, 끈기있게 어필해본다. 다행히 독일 와인업계도 젊은 층이 유입되면서 많이 바뀌고 있다. 지금 같이 일하는 와이너리 절반 정도는 2세가 운영한다.

 

지난해 엄격한 방역 수칙 아래 진행된 베를린 와인트로피 현장 ⓒ독밥/서다희

 

-와인 업계, 직업적으로 전망이 있다고 보는가?
사업이 아니라 취업을 하려고 해도 조건이 점점 더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 특히 한국 시장은 이제 화이트 와인 점유율이 계속 높아지고 있고, 수요도 늘어나고 있다. 찾아보면 와인업계에서 밥벌이 하는 친구들이 꽤 있다. 내가 아는 한국인 친구도 와인 학교를 나와서 와이너리에서 일한다. -독일 와인관련 커리어를 쌓고자 하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
독일에서의 교육과정은 모든 것이 시간이 좀 걸린다. 실습을 강조하면서 단단하게 나가는 나라의 특징과 연관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인내심이 필요하다. 더불어 와이너리도 자주 방문해보면 좋다. 생산자들의 살아있는 지식은 시음과 책으로 보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자산이 될 것이다. 물론 많이 마셔보는 것도 중요하다. 양이 아니라 종류가 중요하다. -앞으로의 계획은?
아직 소개하고픈 와이너리가 많다. 현실적인 목표는 독일 와이너리 30곳, 한국 수입사 10곳으로 늘리는 것이다. 또 코로나 팬데믹이 끝나면 무역에만 그치지 않고 와인과 여행을 함께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해볼 예정이다. 그리고 오랜 숙원 사업인 독일 와인에 대한 책도 쓸 것이다. D

 

인터뷰: 독밥
정리: 이유진
사진: 서다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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