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앞둔 독일 정당의 문화예술 공약

오는 9월 26일 독일에서는 새로운 총리가 결정되는 총선이 열린다. 연방의회 선거 결과로 다수당의 당수가 총리가 된다.

현재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민당(CDU), 기민당과 연정 정부를 꾸린 사민당(SPD), 기후보호 이슈 속에 강력한 다수당 후보로 떠오른 녹색당(Grüne), 자민당(FDP), 좌파당(Linke), 그리고 극우정당 독일을위한대안(AfD) 등이 경쟁한다.

8월 초 대부분의 정당이 분야별 공약을 정리한 공약집을 내 놨다. 그 중 각 정당의 문화정책 공약을 살펴봤다. 현재 독일의 가장 큰 이슈인 기후보호나 디지털 전환, 사회복지, 일자리 및 경제 분야 공약에 비해서는 중요도가 밀리지만 모두 문화(Kultur) 분야를 잊지 않고 정리했다. 특히 프리랜서 노동자가 많은 문화예술 분야 노동자들에 관한 내용도 있다.

선거 공약이란 게 늘 그렇듯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기본적으로 독일의 주요정당이 문화에 대해 어떤 가치와 방향성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다. 

9월 26일 열리는 총선 선거 포스터ⓒ이유진

기민당/기사당(CDU/CSU) 

기민당은 “문화는 인간성의 발현”이라며 “문화는 정체성과 공동체, 연대를 만든다. 문화 교육과 생생한 문화 인프라는 모든 시민들의 일상에서 존재하는 데 꼭 필요한 일부분”이라고 밝혔다. 큰 틀에서는 현 정부에서 추진하고 있는 문화정책 기조를 그대로 유지한다. 

  • 코로나 팬데믹이 오기까지 이뤄냈던 문화 및 창조경제 분야의 성장을 팬데믹 이전 수준으로 되찾기 위해 노력한다. 180만 명이 일하는 문화 분야는 다른 분야와 마찬가지로 창조적인 혁신, 문화적 다양성과 예술적 수준을 대표한다. 코로나 피해를 줄이기 위해 모든 분야의 ‘문화 새출발(Neustart Kultur)’프로젝트를 계속한다. ‘농촌 지역 문화’와 같은 후원 프로그램, 기념물 보호 특별 프로그램, 영화관 미래 프로그램 등을 통해 농촌 지역의 문화를 지원한다. 
  • 문화 및 창조경제, 영화분야를 더욱 강화해 문화 그 자체뿐 아니라 경제 요소를 강화한다. 영화, 음악, 문학, 출판, 게임진흥을 계속 한다. 
  • 독일어는 우리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독일어를 진흥하고 문화어, 관공서언어, 구어체로서 가치를 높인다. 
  • 우리는 우리 전통을 지킨다. 독일의 문화연방주의는 지역의 정체성과 다양성을 위해 유지해야 한다. 오래된 관습과 풍습, 민속춤, 전통노래를 지키고 보호한다. 이를 위해 아마추어 음악 및 독립적인 앙상블 등을 지원한다. 독일의 네 개의 소수민족은 독일의 전통과 문화 다양성의 일부로 지켜야 하며, 관련 진흥 프로그램을 계속한다. 
  • 지속가능성의 일환으로 문화 기관이나 영화 제작, 문화 행사 등에 있어서 환경 발자국을 줄이는데 노력한다. 
  • 예술인들을 사회적으로 보호한다. 예술가를 위한 사회보장 혜택을 강화하고 예술가와 창작가들을 더 잘 보호한다. 문화예술 자영업자들이 비예술적인 부업을 할 때도 건강보험 및 간병보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확대한다. 또한 어떻게 문화 분야 종사자들의 실업 보험을 개선할 것인지 살펴볼 것이다.
  • 나치 역사와 동독 공산당 독재를 청산하는 기억문화를 지속하는 일은 반유대주의, 인종주의, 극단주의로부터 다음 세대를 깨어있게 하며 영속적인 우리의 임무로 기존의 기억 문화 프로젝트 지속한다.
독일 주요 정당 공약집 표지 ⓒ각 정당

사민당(SPD) 

기민당과 연정을 꾸려 정부를 함께 운영하고 있는 사회민주당. 보수 기민당, 진보 사민당으로 한 때 독일의 주요 양대 정당이었지만 기후 이슈를 이끄는 녹색당에 밀린 처지였다. 하지만 코로나 시국에 경제부장관을 맡으며 큰 신임을 얻은 올라프 숄츠 인기가 급상승하며 차기 총리가 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 최고 수준의 문화 정책 대표 회의를 독일 전국적인 문화총회(Kulturplenum)로 발전시키고, 지역, 주정부, 연방뿐아니라 문화 창작자와 문화 관련 협회, 시민사회를 대표하는 이들이 모여 문화 정책의 새로운 임무와 절차에 대한 ‘문화 협약’을 만들고자 한다. 문화를 국가적 목표로 기본법에 명시한다.
  • 문화 진흥을 위해서는 존재하는 인프라를 잘 지키고 자유 문화씬에서 문화 콘텐츠를 제작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특히 예술가들의 생존과 노동 조건을 강화하고, 프리랜서 문화인들의 사회적 안정을 위해서 최소 임금 등을 확실히 세워야 한다.
  • 독일 영화의 국제적 상영 및 독일 내 영화 제작을 통한 일자리 확보 등 영화 산업을 진흥한다. 
  • 게임은 문화상품, 혁신엔진, 경제요소다. 디지털 교육은 물론 e스포츠 분야 등에서 게임의 가능성은 무한하다. 컴퓨터 게임 진흥도 영구적으로 명시한다.
  • 문화와 예술에 참여하는 건 자존감과 개인성 개발, 교육, 통합의 열쇠다. ‘문화는 강하게 만든다(Kultur macht stark)’ 프로그램을 통해 지속가능한 학내 혹은 학외 교육 정책을 펼친다.
  • 문화유산의 디지털화 지원. 문화 공간으로서 디지털 개발 및 디지털 예술 프로젝트를 후원한다. 
  • 국가주의, 인종주의, 반유대주의는 나치 범죄 청산에 있어 새로운 위기다. 이에 목격자의 보고서 등을 과학적으로 정리하는데 지원한다. 작은 시민운동과 기억 장소를 더욱 많이 지원하고, 증인들이 곧 사망할 것을 염두에 두고 새로운 형태의 기념 문화 개발을 촉진한다.
사민당의 선거 포스터. 최저임금 12유로에 투표하세요. ⓒ이유진

녹색당(Grüne) 

녹색당은 “예술은 자유롭고 어떤 목적을 달성해야 할 필요가 없다. 예술은 사회를 투영하고 연대하고 개인성을 구축하는데 중요하다”며 “우리는 코로나 이후에도 문화계가 새로운 생동감으로, 다양성으로, 풍부함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며 문화 정책을 공개했다. 

  • – 기본법 국가의 목적에 문화를 명시한다. 
  • – 코로나 이후 지속가능한 문화 전략을 마련한다. 코로나 이후 문화예술계 종사자들의 노동 환경이 얼마나 불안정했는지 드러났다. 문화계에 더 나은 노동 조건과 아우스빌둥 조건, 공정한 임금 정책을 마련해 민영, 공영 문화 기관 내에서 불안정한 노동 관계를 극복한다. 
  • – 1인 자영업자와 문화인들에게 코로나 위기 기간에 생존금 월 1200유로를 보장한다. 그외 예술가보험 지원을 강화한다.
  • – 공공 박물관 및 미술관에 학생 무료 입장, 도서관 일요일 운영, 저소득 가정을 위한 문화패스 등 지역사회에 문화 접근성을 강화한다.
  • – 문화 경영과 예술도 기후위기 대처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Green Cultur Desk’, ‘Green-Culture Fond’ 등을 통해 문화계를 위한 기후보호 상담처를 만든다.

좌파당(Linke) 

좌파당은 “대도시나 시골지역, 문화기관이든 자유로운 문화씬이든 간에 모든 사람이 접근 가능하고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하고, 해방적이며 참여적 문화정책을 추구한다”고 밝혔다. 

  • 예술가보험 보장 직종을 확대하고 연방 지원금을 확대한다. 문화인 임금 및 출연료 최소 기준을 마련한다.
  • 연방진흥지원금 지급시 사회적 수준과 성평등, 다양성에 기반한 기준을 세운다. 정말로 필요한 이에게 갈 수 있도록 디자인한다. 
  •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협력금지’를 끝낸다. 문화를 공동의 임무이자 국가의 목적으로 기본법에 넣고, 협력적인 문화연방주의를 강화한다.
  • 다른 지역이나 유럽 범위에서 문화 이슈를 좀 더 효과적으로 대변할 수 있도록 연방문화부를 설치한다.
  • 연방이 지원하는 박물관, 미술관 등은 입장료를 받지 않고, 문화교육 인력을 강화한다. 
  • 문화시설은 배리어프리로 접근성을 보장해야 하고 모두를 포괄하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독일을위한대안(AfD)

독일의 반이슬람, 반외국인 정서를 타고 성장한 극우정당 독일을위한대안은 갈수록 세력을 확장하고 있다. 다른 정당들은 여전히 AfD와 협력하는 모양새를 꺼리지만 연방의회에 자리를 잡은 엄연한 정당이 됐다. 독일 국가주의, 민족주의를 강조하는 독일을위한대안은 문화 정책 공약에서도 방향성이 확실하게 드러난다. 

  • ‘다문화’가 아닌 독일 ‘주류문화’를 중시한다.
  • 독일어는 우리 정체성의 중심이다. 독일어를 국어로 기본법에 명시하고 교육 및 학술언어로 지킨다. 
  • 독일 역사는 전체적으로 존중받아야 한다. 공식적인 기억문화는 우리 역사의 암울한 부분뿐만 아니라 찬란한 순간도 조명해야 한다. 국가의식 없는 민족은 영원할 수 없다.

정당별 문화정책을 모두 소개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정당이 문화인들에 대한 사회복지 및 노동 환경 개선 의지를 밝혔고, 문화 진흥을 기본법에 명시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또한 디지털 문화예술 진흥과 독일 문화정책 분야에서 중요한 기억문화 정책도 빠지지 않았다.

눈에 띄는 점은 기후보호 이슈가 문화정책에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문화정책 공약이 있다는 사실, 그 자체다. 한국 선거의 공약집에는 ‘문화정책’으로 분류된 공약을 잘 찾아 볼 수 없다. 돈이 되는 콘텐츠 산업의 일부로서, 문화예술 노동자의 처우 등으로 사이사이 언급될 뿐, 문화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선거 카테고리가 되지 못한다.

한 사회에서 문화와 예술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 돈이 아닌 문화와 예술, 그 자체의 중요성을 인식할 기회가 없다. 독일 정당의 문화 정책 공약을 보며, 한국 정당들의 문화 정책 공약을 고대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