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여성들이 일하기 좋은 도시일까?

ⓒInternational women’s day

지금으로부터 114년 전인 1908년 3월 8일, 미국 뉴욕에서 1만5,000여 명의 여성이 모여 노동시간 단축과 환경 개선, 임금 인상, 여성 투표권 쟁취를 요구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였다. 이를 시작으로 전 세계에 여권신장을 위한 운동이 펼쳐졌고, 1년 후 미국 사회당이 이날을 ‘여성의 날’로 선포했다. 그리고 1975년 UN에 의해 공식적으로 매년 3월 8일을 ‘세계 여성의 날(International Women’s Day, IWD)’로 기념하게 됐다.

세계 여성의 날은 여성이 사회, 경제, 정치, 문화적으로 쟁취한 업적을 기념하고 성 평등에 대한 인식을 고취하는 날이다. 전 세계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축하하는데, 27개 나라는 공휴일로 삼았다. 그중 독일은 독특하게도 수도인 베를린만 특별히 이날을 공휴일로 지정했다. 2019년부터 시작되었으니 최근 일이다.

사실 독일은 덴마크와 스웨덴, 프랑스 등 이웃 유럽 국가에 비해 성 평등 지수가 낮다. 3월 7일 연방 통계청(Destatis)에 따르면 2021년 독일 여성의 시간당 평균 임금은 남성보다 18%적다고 보고했다. 독일의 성별 임금 격차는 지난 15년 감소하고 있지만 현재 독일 여성의 평균 시급(19.12유로)은 남성(23.20유로)보다 4.08유로 낮은 수준이다. 교육 수준이 매우 높은데도 불구하고 여성의 사회 활동을 보장해주는 육아 복지의 부족(타 유럽 국가 비교), ‘일하는 엄마 = 매정한 엄마’로 치부하는 보수적인 문화가 문제라고 한다.

하지만 베를린은 조금 다르다. 베를린은 독일 여성운동의 중심이 되었던 도시다. 독일 최초의 여성 신문을 비롯해 첫 ‘여성 센터’가 생겼고 선구적 프로젝트가 펼쳐진 곳. 흥미로운 점은 ‘분단’이란 역사적 배경이 한 몫 했다는 점이다. 독일 분단 시절, 동독은 서독보다 남녀가 평등한 사회였다. 경제적 자립을 통해 여성 해방과 남녀 평등을 이룬 동독의 여성들. 세계적으로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 중 한 명인 앙겔라 메르켈 전 독일총리가 대표적인 동독 출신 여성이다. 수도마저 분단되었던 탓에 베를린 반쪽은 동독 체제를 지녔다. 덕분에 그 시절에 지었던 많은 탁아소와 유치원은 현재의 워킹맘을 돕고 있다.

또 베를린은 독일에서 가장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도시다. 게다가 저항 문화가 뿌리 깊다. 세계 곳곳에서 모여든 여성들은 다채로운 빛깔과 목소리를 낸다. 그리고 이를 관심 있게 살펴보고 적극적으로 동참하는 시민들이 많다. 철거 위기에 처했던 베를린 소녀상을 다국적 여성 단체의 참여로 지켜낸 것처럼.

이처럼 활발한 여성운동이 펼쳐졌던 베를린엔 여성을 위한 공간과 커뮤니티, 관련 제도와 프로그램 등이 마련되어 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베를린을 살펴봐야 할 이유다.


ⓒFounderland

파운더랜드

코로나19는 빈부 격차뿐 아니라 성의 불평등까지 심화시키고 있다. 가정과 기업에서 여성이 성차별을 받는 사례가 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해 생겨난 홈오피스와 홈스쿨링은 가정과 직장의 경계를 허물었고, 많은 여성들은 아이와 가사를 돌보는 책임을 떠안았다. 성 평등을 위해 공공 의사 결정에 참여할 더 많은 여성 리더가 필요하며 여성의 리더십이 중요하다. 현재 베를린에서 여성의 리더십에 대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곳은 스타트업 신이다. 여성 기업가를 위한 네트워크는 물론 베를린시, 구글을 비롯한 여러 스타트업 캠퍼스의 창업 지원 제도와 프로그램이 눈에 띈다. 파운더랜드(Founderland)는 슈테파니 폰 베어(Stephanie von Behr)를 포함한 여성 리더 세 명이 만든 플랫폼이다. 슈테파니는 베를린이 혁신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사람들을 끌어당긴다고 말한다. 이는 더 나은 미래, 평등한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사회 참여자들이 많다는 걸 의미한다. 그래서 테크 인 컬러는 유럽에서 활동하는 테크 분야의 흑인, 아시아인과 소수민족 여성 창업자에 초점을 둔다. 이들이 구축한 스타트업에 대한 멘토링, 자금 접근성, 가시성 향상 등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곧 론칭해 많은 기대를 불러 모은다.
WEB www.techincolour.org

ⓒFeminist Food Club

페미니스트 푸드 클럽

페미니스트 푸드 클럽(Feminist Food Club)은 2017년 유명 블로거 마리 셰르페(Mary Scherpe)와 디자이너 루트 바르틀렛(Ruth Bartlett)에 의해 시작된 커뮤니티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요식업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의 모임이다. 남성 중심적인 요식업계에서 여성 간의 네트워크를 구축, 강화하고 집단 지식을 확장함으로써 여성의 권리와 안전을 지키고 성차별적 시스템 해체에 그 목적을 둔다. 주목할 점은 지정 성별과 성 정체성이 일치하는 ‘시스젠더’ 여성은 물론 일치하지 않는 ‘트랜스젠더 여성’ 또한 포함한다는 것. 이분법적 성별 개념을 벗어나 다양한 성 정체성을 인정하고 모두의 성 평등을 지지한다. 페미니스트 푸드 클럽은 매달 모임을 통해 돈독한 네트워크를 다져왔으며 코로나19 이후 온라인으로 더욱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요식업계의 위기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디지털화, 홍보와 마케팅, 호스피탈리티 등 전문가들이 새로운 전략 모색과 함께 인사이트 공유를 돕는 등 적극적 활동이 돋보인다.
WEB www.feministfoodclub.com


ⓒWonder Coworking

여성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

여성 간의 연대를 더욱 돈독히 해주는 곳이 있다. 바로 코워킹 스페이스다. 베를린엔 여성만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가 여럿 있는데, 대표적인 곳이 ‘원더 코워킹(Wonder Coworking)’이다. 젊은 가족 인구가 높은 프렌츨라우어베르크에 위치한 원더 코워킹은 편안하면서도 쾌적한 작업 공간은 물론 전문가 강연, 정기적인 네트워킹 이벤트 등을 제공한다. 특히 원더 코워킹이 운영하는 온라인 커뮤니티 플랫폼인 ‘펨베이스(Fembase)’는 다양한 자료 및 회원간의 피드백을 공유해 인기가 높다.
그런가 하면 ‘워캔키드(Work’n’kid)’는 워킹 맘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특히 코로나19 이후 홈 오피스가 괴로운 엄마와 아이들에게 작업 공간과 놀이방을 함께 제공한다. 공간뿐 아니라, 생후 3개월부터 만 3세까지 돌봄 서비스도 마련되어 있어 일에 집중할 수 있다. D
WEB 원더코워킹 www.wonder-coworking.de 워캔키드 www.worknkid.d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