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스타트업] 이지쿡아시아 이민철
전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에서 독일 베를린은 손꼽히는 도시다. 독일 통일 이후 베를린으로 몰렸던 자유와 예술의 열기는 지금 혁신과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한 스타트업의 열기로 바뀌었다. 빈 공간과 빈 건물은 스타트업을 꿈꾸는 이들에게 자리를 내주었고, 내로라하는 독일 주요 기업들도 스타트업을 지원하면서 ‘힙한 기업’으로서의 이미지를 내세우고 있다. 베를린의 이 많은 코워킹 스페이스와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엑셀러레이터를 채우고 있는 건 물론 전 세계에서 모인 자유로운 영혼들이다.
베를린 서쪽 변두리, 동네 이름조차 ‘지멘스도시(Siemensstadt)’였던 그곳은 한때 지멘스 공장이 시끄럽게 돌아가던 곳이었다. 공장은 다른 지역으로, 다른 나라로 떠났지만 이 빈 공장은 이제 다른 이유로 시끄럽다. 지멘스에서 후원하는 스타트업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들이 매일매일 새로운 아이디어로 새로운 시도를 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곳에 한국인이 중심이 된 스타트업이 있어 주목받고 있다. 한국 그 이상, 아시아 지역의 음식을 테마로 한 밀키트 스타트업 이지쿡아시아(Easy Cook Asia)다.
일단 테스트 삼아 이지쿡아시아가 내놓은 상품을 주문해봤다. 한국박스다. 불고기와 잡채, 비빔밥 세 개의 메뉴 총 6인분의 음식 재료가 들어있다. 하나의 메뉴를 완성하는데 필요한 모든 재료와 레시피, 그리고 음식 및 그 나라에 관련된 짧은 매거진이 함께 배달되었다. 양도 많고 맛도 좋다. 박스에 함께 딸려 온 보딩패스를 보니 기분도 좋아진다. 이 음식을 먹을 때 만큼은 이 나라를 여행하는 기분을 주고자 하는 창업자의 마음이 느껴진다. 이지쿡아시아를 이끌고 있는 사람은 이민철 대표다. 독일 베를린에 온 지는 이제 3년. 이민철 대표를 만나서 그가 생각하고, 경험하고 있는 베를린의 스타트업씬, 그리고 이지쿡아시아에 대해서 들어봤다.
안녕하세요 대표님. 베를린 스타트업 환경이 좋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는데 사실 한국 사람은 잘 보지 못한 것 같아요. 정말 반갑네요. 어떻게 베를린까지 오게 되셨나요?
저는 2017년 베를린에 왔습니다. 그 전에 중동이나 아프리카, 베트남 등 다양한 나라에서 세일즈와 법인 설립 등 다양한 일을 해왔습니다. 좀 더 새로운 걸 해 보고 싶어서 찾는 중이었는데, 베를린에서 공부를 했던 지인의 추천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습니다. 오고 나니까 베를린이 저희에게 정말 잘 맞는 곳이더라고요. 정말 너무 좋습니다.
어떤 측면에서 그렇죠?
먼저 저는 스타트업을 하고 싶었는데 베를린이 스타트업 에코 시스템이 매우 잘 된 곳입니다. 일단 젊은이들이 많고, 물가가 저렴하고, 정보도 많죠. 벤처캐피탈이나 스타트업 관련 행사도 많고, 영어도 잘 통하는 곳입니다. 다양한 나라를 경험해봤는데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곳인 것 같아요. 물론 실리콘밸리나 런던에도 스타트업이 많은데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젊은이들은 특히 더 이곳에 더 몰리는 것 같아요. 말했듯이 물가도 싸고,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도 풍부합니다.
지금 ‘이지쿡아시아‘라는 스타트업을 운영하고 있는데 창업 과정이 궁금합니다.
이지쿡아시아는 사업자등록을 한 지 몇 달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스타트업입니다(웃음). 베를린에서 MBA를 다녔는데 스타트업 쪽으로는 특히 잘 되어있는 학교였습니다. 1년 반짜리 프로그램인데요, 공부하면서 아이디어를 점점 더 개발해나갈 수 있는 곳이었죠. 저도 2018년 1월쯤 아이디어가 생겨서, 당시 학교 친구였던 대만인 친구와 함께 시작하게 되었죠.
그래서 ‘이지쿡아시아‘ 아이디어는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처음에 베를린에서 아시아 마켓에 갔는데 생각보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깜짝 놀랐습니다. 아시아인뿐만 아니라 독일 현지인도 많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슈퍼를 할까? 이런 생각도 했었어요. 그런데 손님들을 자세히 보니 쇼핑하는 시간이 참 길더라고요. 재료에 한국말, 중국말 적혀있고, 소스통을 한참 동안 쳐다보더라고요. 뭔지 모르니까요. 한가지 요리를 하기 위해서 마켓 이곳저곳을 다 돌아다녀야 해요. 어디든 그렇지만 슈퍼는 공급자 위주, 사장님 편하게 배치가 되어 있잖아요. 그래서 주제별로 두면 좋겠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됐고, 온라인, 밀키트… 이렇게 아이디어를 점점 발전시켰어요. 지금은 밀키트 박스 안에 문화를 넣은 컨셉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한국 음식만 하는 건 아닌 거 같네요.
네. 저희가 2020년 런칭을 목표로 하고 있고 지금은 테스트 박스를 만들어서 시험해보고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 12개 나라를 선정, 12개 요리 박스를 만들 계획입니다. 나라마다 중요한 시기가 있고, 그 시기에 맞춰 나라를 선정하고 음식을 먹으면서 여행하는 컨셉입니다. 박스에 요리 재료뿐만 아니라 각 나라 음식 문화를 담은 작은 매거진과 여행 컨셉을 살린 여러 정보를 함께 제공합니다.
다른 아시아 지역 음식의 전문성은 어떻게 채울 계획인가요?
그 나라 음식은 당연히 그 나라 사람이 가장 잘 압니다. 우리가 직접 싱가포르 음식을 개발하는 건 맞지 않는 일이죠. 일단 12개 나라를 선정하고 독일에 있는 현지 음식점, 해당 국가의 대사관과도 연락을 할 계획입니다. 필리핀이나 싱가포르 대사관 쪽에 연락을 했는데, 직접 만나서 정말 환영해주시더라고요. 일단 그 나라 음식은 그 나라 사람이 직접 기획하고 상품을 만드는 게 원칙입니다.
독일의 푸드 스타트업, 고려해야 할 중요한 요인이 있다면요?
지속가능성과 환경이라 생각해요. 처음에는 저희 제품에 포장지가 꽤 많았는데요, ‘플라스틱을 쓰지마라’는 피드백을 가장 많이 받았습니다. 정말 상상 이상으로요. 그래서 쿨링 포장 용기 등 친환경 포장 용기를 찾으려고 온라인 오프라인을 정말 많이 뒤졌습니다. 친환경적인 포장 용기를 선택하는 데 공을 들였습니다.
베를린은 푸드 스타트업이 특히 많은 것 같아요. 베를린 스타트업 씬의 특징이 뭘까요?
음식, 바로 생업에 관련된 거죠. 베를린은 특색이 없는데요, 바로 그게 특색인 것 같아요(웃음). 먹고 사는 게 힘들잖아요. 예술가도 많고, 물가도 저렴하고 그래서 스타트업이지만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장벽이 낮은 분야가 음식 분야 같습니다. 미국은 기술, 런던은 금융 등 이런 것들은 장벽이 높은 편이죠. 이곳은 저희 같은 밀키트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온라인 음식 배송이나 물류 관련 스타트업이 많은 것 같습니다.
베를린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데 장점은 또 뭐가 있을까요?
베를린에서 성공한다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기가 쉽습니다. 베를린에서 시작해서 유럽으로 확대하고 그다음 미국, 전 세계로 확장하는 스타트업이 실제로 많습니다. 한국에도 요즘 정말 좋은 스타트업이 많은데요, 아이디어도 좋고 한국에서도 잘 되죠. 그런데 한국에 갇혀 있어 해외로 나아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문화와 언어의 장벽도 물론 있고요, 그런 부분이 조금 아쉽습니다.
베를린에서 스타트업을 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일단 저희가 받는 지원 프로그램이 독일 정부 측 프로그램이라서 그런지 기본적으로 독일어를 기반으로 합니다. 저희가 지금 베를린 스타트업 장학금을 받고 있는데요, 당시에도 사업계획, 발표 등을 모두 독일어로 했고, 분위기상 아무래도 독일어를 하는 팀을 선호하는 느낌도 받았습니다. 그래서 일단 독일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한다면 독일인 팀원이 꼭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지금 입주해있는 지멘스 스타트업 인큐베이터 베를린은 어떤 곳인가요?
먼저 학교에서 포스터를 보고 독일 스타트업 대회에 참여했는데 좋은 결과가 나왔습니다. 사실 다들 독일어로 했고, 저만 영어로 했는데요 그런 부분도 양해가 되었습니다. 각자 아이디어 상품을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에 공개, 얼마나 많은 이들을 모았느냐가 1차 선정기준이었습니다. 이후 마지막 피칭을 통해서 최종 우승자로 선발되었습니다. 그때 학교와 지멘스, 유럽소셜펀드가 함께 주최했는데요 그때 이 인큐베이터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이 공간을 사용하는 것 이외에도 저희는 베를린 스타트업 장학금에 선정되어서 3명의 멤버가 매월 장학금을 받으면서 일하고 있습니다.
지멘스 인큐베이터의 ‘나우 프로그램’은 매우 유연한 지원 프로그램입니다. 어떤 아이디어가 있을 때 담당자를 찾아서 개인적으로 지원하고 상담을 하면, 심사를 통해서 빠르면 그 다음 날부터 바로 이곳을 쓸 수 있습니다. 사무실 이용은 모두 무료입니다. 스타트업 관련 행사 및 코칭, 교육 프로그램 등이 매우 잘 되어있어요.
독일이 보수적인 곳이라서 독일어 프로그램도 꽤 많은데요, 요즘에는 영어로도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곳에 지금 아시아인으로는 저희팀이 최초로 입주한 것 같아요.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곳을 방문해서 일단 물어보고 상담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이민철 대표를 만나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쓰는 동안에도 이지쿡아시아는 계속해서 변했다. 브랜딩을 새롭게 하고, 그 사이 싱가포르 박스도 출시됐다. 이것도 물론 주문해봤다. 익숙한 한식과는 달리 싱가포르 요리는 생전 처음 보는 재료와 요리방식에 잠시 ‘멘붕’이 왔다. 차분히 레시피를 보고 요리를 마친 순간 남모를 성취감이 찾아왔다.
한식과는 또 다른 향기와 분위기에 ‘여행’과 ‘문화’ 컨셉을 담은 박스의 진가를 더 느낄 수 있었다. 이지쿡아시아는 한국인 혹은 아시아인이라는 비주류적 특성을 강점으로 바꾼 아이디어, 그리고 베를린의 자유로운 스타트업 지원 환경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다. 2020년 독일에서 만나게 될 아시아 열두 나라의 여행 티켓을 미리 주문해야 할 것 같다. D
▼ 코로나19 위기가 기회가 된 이지쿡아시아의 이야기 2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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