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ESG] 독일 플라스틱병 반납 시스템 ‘판트(Pfand)‘ 20주년
독일 슈퍼마켓에 장을 보러 갈 때 반드시 챙기는 것이 있다. 몇 주 간 모아 놓은 빈 병이다. 플라스틱 생수병부터 음료 캔, 맥주병 등 종류도 다양하다. 판트(Pfand)라고 불리는 독일의 병 반납 시스템은 독일에 살면서 빠른 시간 내에 익숙해지는 일 중 하나다.
독일 대부분의 슈퍼마켓 체인점에는 재활용 병 반납기가 있다. 재활용 로고가 붙은 플라스틱 병이나 캔은 25센트, 맥주병은 8센트를 바우처로 돌려 받는다. 바우처는 해당 슈퍼마켓에서 바로 사용할 수 있다.
올해로 독일의 판트 시스템이 20년을 맞았다. 20년 간 독일 전역에 같은 시스템을 구축하고 유지하고 있다는데 독일 ‘시스템‘의 힘을 엿볼 수 있다.
독일, 공병 보증금 ‘판트’ 시스템
독일의 판트 제도는 법적으로 규정된 사회 시스템이다. 1988년 당시 환경부 장관 클라우스 퇴프너(Klaus Töpfner)가 처음으로 포장 규정을 도입했다. 캔이나 플라스틱병과 같은 일회용 포장의 시장 점유율이 28%이상 증가하면 일회용 병에 대한 보증금, 즉 판트 비용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쓰레기 매립을 줄이고, 재활용을 수월하게 하고, 음료병의 재사용 시스템을 보호하기 위한 취지였다. 이 제도는 재활용 포장 비율이 71%로 떨어진 1991년 처음 시행됐다.
이후 여러 법적 논쟁과 법률 개정을 거쳐 2003년 오늘날의 판트 시스템이 정착됐다. 현행 포장법(Verpackungsgesetz) 31조 ‘일회용 음료 포장에 대한 판트 및 반환 의무‘에 따르면
일회용 음료 포장 제조업체는 포장당 최소 25센트 보증금을 고객에게 청구해야 한다. 주스나 우유 등 일부 품목을 제외한 대부분의 플라스틱 음료병이 포함된다. 맥주병은 8센트를 보증금으로 부과한다. 이는 최종 소비자에게 전달될 때까지 모든 유통 단계에서 이뤄진다.
음료 유통업자는 실제 상품이 판매된 장소, 혹은 판매소와 가까운 장소에서 정상 영업 시간에 일회용 포장 용기를 무상으로 회수하고 판트 비용을 되돌려 줘야 한다. 대부분의 슈퍼마켓이 판매 반납기를 설치하고 있는 배경이다. 단, 판매소 면적이 200 제곱미터 미만인 경우에는 해당 상점에서 판매한 병만 회수할 수 있다. 슈퍼에서 회수된 병은 역으로 병 제조업체까지 반납되어 재활용된다.
판트 수거률 98.5%
독일 환경지원(Deutschland Umwelthilfe e.V) 단체에 따르면 현재 판매된 일회용 음료 포장의 98.5%가 소매점에서 회수된다. 맥주병 재활용 비율도 80% 이상이다. 빈 병은 곧 돈이다. 소비자들이 직접 소비하고 반납하는 경우도 많지만 소위 ‘길거리 수거‘도 많이 이뤄진다. 공원이나 야외 쓰레기통 부근에 버려진 일회용 병이나 맥주병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노숙자나 빈곤에 처한 노인들, 학생들에게 쏠쏠한 수입원이 된다. 여기 저기 맥주병이 쌓이는 야외 축제나 행사에서는 거대한 카트를 끌고 전문적(?)으로 병 수거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다.
판트 시스템은 사회 문화적 의미로도 재해석되고 있다. 독일 음료 제조업체 프릿츠 콜라는 2015년부터 빈 병 수거자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과 수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판트는 그 옆이 어울린다(Pfand gehört daneben)“ 캠페인을 실시하고 있다. 빈 병을 쓰레기통 안에 버리지 말고 옆에 세워두라는 뜻이다.
프릿츠 콜라의 연구에 따르면 매년 판트 가치 1억8000만 유로에 이르는 빈 병이 쓰레기통에 버려진다. 독일에서 적극적으로 빈 병을 수거하는 사람의 수는 98만 명으로 조사됐다. 빈 병 수거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빈 병 수거자들은 보통 하루 최대 4유로를 번다. 최대 수익이 일 30-49유로인 경우도 있지만 매우 드문 사례다. 응답자의 28%가 판트 보증금이 유일한 수입원이라고 답했으며, 26%는 직업이 있지만 수익이 부족해 빈 병을 수집한다고 밝혔다.
이들은 빈 병을 찾기 위해 쓰레기통 안을 뒤지고 그 과정에서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빈 병을 쓰레기통 옆에 세워 놓으라는 이유다. 쓰레기통 옆에 빈 병을 별도로 모을 수 있는 거치대를 설치하는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 놓는다. 또한 빈 병 수거자들을 거리의 부랑자가 아니라 순환 경제에 기여하는 한 시민으로 만들고 있다. 독일 순환 경제의 근간인 판트 시스템의 또 다른 사회적 의미다.
시스템의 힘
독일 정부는 포장법 개정을 통해 판트 시스템을 적극적으로 확장하고 있다. 지난 2022년부터 내용물과 상관없이 모든 일회용 플라스틱병에 판트 의무가 부과되었다. 그동안 우유나 과일 주스가 담긴 일부 품목은 플라스틱병임에도 판트 의무에서 제외되어 왔다. 일회용 플라스틱 병 제조사는 2025년까지 재료의 4분의 1을 재활용 플라스틱으로 사용해야 한다. 다만 환경 단체가 요구하던 종이팩 포장재의 경우 환경 친화적 용기로 판단해 판트 의무에서 제외했다.
독일의 판트 제도에서 주목할 만한 점은 재활용 책임을 소비자에게 떠넘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시민들의 노력과 도덕성에 호소하지 않는다. 법적 규정을 통해 제조업체와 판매자가 함께 시스템을 구축한다. 소비자들은 실생활 속에서 최대한 간편하게 순환 경제에 참여할 수 있다. 시스템을 만드는 것. 정치와 국가가 해야 할 일이다.
이런 시스템을 하루 아침에 만들 수는 없다. 독일에서도 지난한 논쟁과 법적 다툼이 있었다. 특히 비용을 들여 시스템을 만들어야 하는 제조업체와 유통업체의 반발이 컸다. 하지만 한 번 구축된 시스템은 계속 개선되고 확대되어 지금은 독일 순환 경제의 근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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