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라디오 진행자의 BTS 발언이 인종차별인 이유
잊을만 하면 다시 수면 위로 떠 오른다. 이번에는 독일 라디오 진행자가 BTS 인종차별 발언을 해 논란이 됐다. 사실 K-Pop을 다루는 독일 미디어에서 인종차별적인 늬앙스를 만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번엔 정말 차원이 다르다. 평소 ‘좋은 일’을 하던 라디오 진행자가 라이브로 내 뱉은 혐오 가득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또 다른 차원을 경험한다. 독일에서 왜 자꾸 이런 일이 반복되는걸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의 발언이 왜 인종차별인지 살펴본다.
BTS 혐오발언 일파만파
2월 24일 독일 공영 라디오 채널 바이에른의 <마투시케-어느 조금 다른 저녁(Matuschke – der etwas andere Abend)> 방송에서 진행자인 마티아스 마투시크(Matthias Matuschik)가 BTS의 콜드플레이 커버 공연을 언급하며 혐오발언을 했다. 다음은 주요 요지.
“BTS는 사스같은 것이다. 그건 빌어먹을 한 바이러스의 줄임말인데, 곧 백신이 나오기를 바란다. (중략) 이건 한국에 반대하거나 외국인 혐오가 아니다. 나는 한국 자동차를 가지고 있다. (중략) 이 작은 오줌싸개(kleine pisser)들이 콜드플레이의 Fix You를 커버했다. (중략) BTS는 북한에 향후 20년 간 휴가를 보내야 한다”
#RacismBayern3
#RassismusbeiBayern3
#Bayern3Racist
실제 그의 음성을 들어보면 독일어를 이해하지 못해도 느낄 수 있다. 거친 말투에 묻어난 혐오. 공영방송 라디오에서 라이브로 쏟아진 혐오의 목소리에 세계적인 분노가 일었다. 트위터에서 #RacismBayern3 #RassismusbeiBayern3 #Bayern3Racist 해시태그를 붙이면서 사건은 일파만파 퍼졌다.
분노 키운 바이에른3의 사과문
바로 다음 날인 25일 바이에른3 방송국은 사과문을 발표한다. 일단 사과문 전문을 보자.
<마투쉬케-어느 조금 다른 저녁> 방송에서 라디오 진행자 마투쉬케는 매우 성공한 한국 밴드 BTS와 언플러그드 콘서트에서 커버한 콜드플레이 <Fix You> 무대에 대한 그의 개인적인 생각을 표현했고, 많은 사람들이 그에 대해 불만을 제기했습니다. 진행자가 생각을 명확하고, 솔직하고, 꾸밈없이 표현하는 것은 이 방송과 진행자의 특징입니다. 이번 사안은 그가 그의 생각을 반어적이고 극단적이고, 과장된 흥분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벌어졌고, 그의 단어 선택은 목적한 바를 지나치게 넘어가 BTS 팬들의 감정을 상하게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가 우리에게 확실하게 말한 것은, 결코 의도한 것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그는 단지 위에 언급한 커버 버전에 대한 불만을 표현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그의 개인적인 생각과 취향에 관한 것으로, 밴드의 출신 국가나 문화적인 배경과는 상관이 없습니다. 이런 취향은 그의 거친 말투처럼 공유할 필요는 없습니다. 과거 마티아스의 행적과 활동(예시: 난민을 돕기 위한 사회참여, 극우주의 반대 운동 등)은 그가 모든 종류의 외국인 혐오나 인종차별과는 완전히 떨어져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 부분은 그가 방송 당시에 말하려고 했지만, 많은 이들이 그의 표현을 모욕적이고 인종차별로 느꼈다는 것을 바꿀 수는 없었습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정식으로 사과합니다. 우리는 마티아스와 팀과 함께 이 주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자세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사과문의 형식을 하지만, 그럴 의도가 없었고, 마티아스는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라는 걸 강조했다. 마티아스가 이전에 해왔던 아주 훌륭한 행동을 함께 언급하면서. 분노가 가라앉지 않자 마티아스 본인과 방송국의 추가 의견이 나왔다.
마티아스와 방송국의 추가 사과문
“저는 방송 중 제 표현이 일으킨 반응에 대해 매우 놀랐습니다. 그리고 먼저, 정말 죄송합니다. 저는 제대로 사과하고 싶습니다. 저는 방송을 진행하며 먼저 보이밴드 BTS가 제가 정말 아끼는 곡인 콜드플레이의 <Fix you>를 커버했다는 사실에 화가 났습니다. 이 일곱 소년들의 국적은 중요하지 않았는데, 그걸 언급하고 바이러스와 연관지은 것은 완전히 빗나간 것입니다.
저는 그동안 정말 많은 생각을 했고, 내 발언으로 여러분들을, 특히 아시아 커뮤니티를 인종차별적으로 모욕했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받아들입니다. 그건 결코 제 의도가 아니었지만, 결국 중요한 것은 단어가 의미한 것이 아니라 그 단어가 청자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졌는가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바이에른3》 측도 “우리는 마티아스 마투시케의 방송 중 표현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한다. 그가 BTS에 대해 표현한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며 “많은 사람들이 표현을 모욕적이고 인종차별적이라 느꼈다면 그것은 인종차별”이라며 재차 사과했다.
이어 “하지만 우리는 마티아스가 인종차별적 시각과 멀리 떨어져 있고, 수년 간 그가 바이에른에서 국적, 문화, 피부색, 성적지향, 종교와는 상관없이 사람들의 평화로운 공존을 위해 행동함으로써 이를 증명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진행자와 그의 가족들은 현재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우리는 이 분노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며, 이 논의가 내용적(실질적)인 수준으로 이어지기를 부탁드린다. 우리는 마티아스와 전체팀과 함께 이 주제를 상세하게 검토하고 이런 심각한 실수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의 발언이 인종차별인 이유
소셜 미디어상에서는 여전히 이 논란을 이해하지 못하는 독일인들이 많다. 이 발언은 마투시케의 ‘농담’일 뿐 인종차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경험을 우리는 수없이 많이 했다. 호른바흐 광고 사건 때도, 코로나로 인한 숱한 인종차별적 발언과 미디어 이미지에서도 마찬가지다.
보이밴드에 대한 호불호는 누구나 있을 수 있다. 당연히 그 호불호를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아시아) 보이밴드를 바이러스에 비유하는 건 차원이 다른 문제다.
BTS가 만약 영국의 밴드였다면, 마티아스는 BTS를 바이러스에 비유를 했을까? 거기다 강제수용소를 연상시키는 북한 휴가 발언까지, 그는 단순히 BTS에 대한 호불호를 말한 것이 아니라 BTS가 한국(아시아) 출신이기에 나올 수 있는 발언을 계속했다. 그게 바로 인종주의다.
독일에서 아프리카와 중동계 외국인들에 대한 인종차별은 사회 정치적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이지만 아시아계 외국인에 대한 인종차별은 대부분 ‘농담’이나 ‘풍자’ 정도로 치부된다.
아시아인들은 독일이 직접적 가해자였던 제국주의 역사와는 관련이 없고, 독일 사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난민 문제의 당사자도 아니다. ‘가해자’나 ‘당사자’의 시각이 아니기에 늘 피상적이고 타자화된다. 이번 BTS 인종차별 발언도 그런 맥락에서 아무런 문제의식 없이 튀어나왔다고 볼 수 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BTS를 언급한 탓에 세계적으로 논란이 되었다는 사실. 독일 사회가 이번만큼은 조금 깨달을 수 있기를 바란다.
* 바이에른3 입장문 전문: https://www.bayern3.de/stellungnah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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