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연방재정부에서 열린 태권도 행사, 그 이유는?
지난 15일 금요일 저녁,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연방재정부에서 태권도를 소개하는 설명회가 열렸다. 한국문화원과 같은 국가기관이 기획한 것도, 대중들을 상대로 한 공개 행사도 아니다.
독일 연방재정부 직원만을 대상으로 태권도를 소개하는 자리다. 연방재정부 직원들로 구성된 스포츠 동호회(Sportgemeinschaft BMF)와 함부르크와 킬(Kiel)에서 태권도장 ‘강센터(Kang Center)’를 운영하는 강신규 사범이 함께 기획한 행사다.
독일 연방재정부의 체력단련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일을 마친 직원들이 내려와 삼삼오오 운동을 하고 있었다. 행사가 시작되자 20여 명이 넘는 직원들이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행사는 연방재정부 스포츠동호회 회장인 토마스 모어(Thomas Mohr)의 인사말로 시작됐다.
이어 프랑크 무직(Frank Moosig)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의대 교수가 ‘태권도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주제로 짧은 강연을 이어갔다. 그는 과학적으로 입증된 여러 데이터와 논문을 소개하며 태권도의 심리적, 육체적인 효과에 대해서 설명했다. 무직 박사는 이미 태권도 파란 띠를 매고 있어 강연에 신뢰도를 더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강센터 태권도 수강생들이 직접 도복을 입고 나와 태권도 기본 동작이나 시범 훈련을 보여줬다. 흰 띠부터 검은 띠까지 다양한 수준에서 훈련하는 수강생들이 참여했다. 태권도 수업이 실제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여주는 취지다.
강신규 사범은 유럽 및 독일에서 태권도가 시작되고 발전되어온 역사에 대해서 짧게 설명했다. 독일 곳곳을 배경으로 한 역사적 사진들을 보여주면서 흥미를 끌었다. 그는 타인과 겨루는 시합으로서의 태권도 보다는 자기 스스로에게 집중하는 전통적인 태권도 정신을 강조했다.
마지막 시범에서는 태권도의 ‘그로스 마이스터(Groß Meister, 대사범)’다운 힘과 정신력을 보여줬다. 공식적인 행사가 끝나고 연방재정부 직원들은 수업 일정 등에 대해서 물으며 태권도 수업에 큰 관심을 보였다. 한 참가자는 ‘역시 그로스 마이스터는 다른 것 같다. 힘과 절제력이 남들과는 다르다’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행사 이후 직원들의 상담까지 모두 끝내고 나서야 강신규 사범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독일에서 태어나고 자란 2세입니다. 독일 북쪽 도시 킬에서 자랐고 함부르크에서 물리학을 전공, 현재 고등학교에서 물리와 수학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함부르크와 킬 두 곳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고 있고, 일주일에 한 번씩 베를린에 와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물리 교사로 일하면서 도장도 함께 운영하신다고요? 그게 가능한 건가요?
네, 고등학교 교사로서 75% 일을 하고 있고요, 태권도 사범으로서의 일은 천직(Berufung)로 여기면서 하고 있습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재미있어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태권도는 언제부터 배우고, 또 가르치게 되셨나요?
5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독일인 사범에게 배웠다가 이후 독일 태권도의 개척자 중 한 분이신 권재화 사범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태권도를 가르치게 된 것은 2004년 대학 스포츠 수업에서 처음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행사는 어떤 계기로 마련된 건가요?
태권도를 배우는 제자 중에 연방재정부 직원이 있습니다. 재정부 내에서도 태권도 수업이 개설되었으면 좋겠다고 재정부 스포츠동호회에 제안했고, 직원들 대상으로 설명회 겸 시범회를 열게 되었습니다. 다음 주부터 수업이 시작됩니다. 원래는 독일 연방의회에서 태권도를 가르치고 싶었는데요, 그건 시간이 조금 더 걸릴 것 같습니다.
아까 태권도를 소개하면서 전통 태권도에 대해 말씀하셨는데요, 전통 태권도는 어떻게 다른가요?
타인과 겨루고, 시합 출전 같은 것에 집중하지 않고 나 자신에 집중하는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말합니다. 겨룰 때도 신체접촉을 하지 않고 절제하는 것을 배웁니다.
오늘 행사를 마쳤는데 반응이 어떤 것 같나요?
재정부 스포츠동호회 회장이 처음에는 사람들이 많이 오지는 않을 거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참석자가 많아서 둘 다 놀랐습니다. 동호회 회장도 행사가 끝나고 이야기를 해 보니, 본인도 하고싶어 하는 것 같네요(웃음).
독일 내 한국 문화에 대한 인기가 늘어나고 있는데, 태권도장에도 관련한 변화가 좀 있나요?
제 생각에는 한국을 알기 전에 태권도를 먼저 알게 됩니다. 오히려 태권도를 통해서 한국을 알게 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태권도 수업뿐만 아니라 대외적인 행사에도 많이 참여하시는 것 같아요.
네, 현재 사단법인 함부르크 독한협회의 회장으로도 일하고 있는데, 독일 사람들이 아직도 한국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구나 하는 걸 종종 느낍니다. 독일과 한국은 비슷한 것이 많고, 교류하는데 문화와 역사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과 사회가 잘 발전해가려면 역사와 문화를 알아야 하고 서로에 대한 이해, 교육도 중요합니다. 그래서 대외적인 활동도 열심히 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짧은 대화였지만 강신규 사범의 강인한 정신과 태권도에 대한 신념이 느껴졌다. 특히 독일에서 태어난 2세로서 한국에 대한 정체성을 지켜가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강 사범은 독일에서 살고 있는 1세대 한인들에게는 무료로 태권도 수업을 제공한다고 한다. 독일에서 힘들게 뿌리를 내린 어르신들에 대한 존경과 배려심에서다. 강 사범은 태권도뿐만 아니라 함부르크 독한협회 회장으로서 활발하게 문화, 역사, 학술 분야의 교류사업도 진행 중이다. 함부르크 독한협회는 독일 내 몇 안 되는 쌍방향 협회로 다양한 현지 교류 활동을 하는 곳이다. 강신규 사범의 향후 행보가 더욱더 기대되는 이유다. 조만간 독일 연방의회에서도 태권도 설명회가 열리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