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운의 베를린 신공항(BER) 드디어 개항!!

비운의 베를린 신공항(BER) 드디어 개항!!

느낌표를 두 개 붙일 수밖에 없다. 10월 31일 베를린 신공항이 드디어, 진짜로, 정말로 개항했다. 그동안 독일의 수도 베를린에는 한국의 고속버스터미널만도 못한 수준의 작은 공항 두 개가 운영되고 있었다. 테겔(TXL)과 쉐네펠트공항(SXF). 물론 한국에서 베를린을 오가는 직항도 없었다.

14년 간의 긴 여정. 베를린 신공항에는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베를린 신공항 개항을 진심으로 축하하면서, 왜 문을 열어도 여전히 비운의 공항인지 살펴보도록 하자.

 

10월 31일 개항한 베를린 신공항 © Flughafen Berlin Brandenburg / Günter Wicker

-베를린에는 왜 큰 공항이 없었나?

유럽의 중심 독일, 독일의 수도 베를린의 공항 두 곳은 비좁고 낙후된 곳으로 유명하다. 테겔공항은 그나마 시내와 가까워 참을 만 했으나 쉐네펠트 공항은 시내와도 멀고, 컨테이너 같은 건물로 갈 때마다 한숨이 나오는 공항이었다.

독일 분단시절 동독에 둘러싸인 베를린, 도시 안에서도 동서로 분단되었기 때문에 애초부터 큰 공항이 지어질 수 없었다. 국제적으로도 직항이 드물었다. 접근성이 떨어지니 기업들도 더 올 생각을 안 했다. 악순환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통일된 지 얼마되지 않은 1996년 새로운 공항 건설이 결정됐다.

-베를린 신공항 개항은 왜 자꾸 미뤄졌나?

먼저 그간 베를린 신공항 오픈 일정을 살펴보자.

2011년 10월 30일
2012년 6월 3일
2013년 3월 17일
2013년 10월 27일
2017년 쯤
2018년 쯤

2020년 10월 31일

베를린에 신공항을 세우겠다는 계획은 1996년에 결정됐다. 2006년 첫 삽을 떴고 2011년 첫 개항 일정을 잡았다. 개항을 앞두고 화재 경보 시스템의 결함이 발견되어 처음으로 일정이 미루어졌다. 이후 운영 회사가 파산, 새로운 운영 회사를 찾고, 감찰 및 검찰 수사까지 이어졌다. 그렇게 또 여나 싶었는데 건설 계획에 결함을 또 발견, 수정, 발견, 수정을 거쳐 결국 베를린 신공항은 시민들의 조롱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

항간에는 이때까지 올린 것을 다 부수고 원점에서 새로 짓는 게 차라리 더 경제적인데 아무도 그 말을 못 꺼내고 있다는 말까지 돌았다.

 

코로나 와중에 개항한 베를린 신공항 © Flughafen Berlin Brandenburg / Günter Wicker

-베를린 신공항 건설 비용은?

당초 계획 때는 20억 유로가 제안되었지만 오픈까지의 혼동 속에서 비용이 급증했다. 현재 오픈까지 투입된 비용은 73억 유로 정도. 그리고 코로나 락다운을 2일 앞두고 개항했다. 꼭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처음부터 정부 지원금으로 운영을 겨우 이어나갈 수준이라고.

-베를린 기존 공항은 어떻게 되는가?

쉐네펠트 공항(SXF)은 베를린 신공항의 5번 터미널로 계속 이용된다.
테겔 공항(TXL)은 11월 7일까지만 운행되고 이후 문을 닫는다.
(그래서 지금 테겔공항에는 코로나 검사소가 없다. 일주일 동안 테겔에 내리는 고객들은 베를린중앙역 가서 검사 받아야 한다고 한다 ^^)

 

베를린 신공항(BER) © Flughafen Berlin Brandenburg / Günter Wicker

-베를린 신공항 진짜 개항, 문제 없이 잘 돌아갈까?

베를린 신공항 개항 전 여러차례 ‘시뮬레이션’이 이뤄졌다. 참가자 신청을 받았는데, 당시 참가한 사람의 후기에 따르면 ‘엉망진창’이었다고. 물론 시뮬레이션이니 이후 피드백을 통해 충분히 개선했을 거라 믿는다.

그리고 코로나로 뱅기 자체가 별로 뜨지 않는다. 10월 31일 개항식에는 환경운동가들이 와서 개항식을 막는 시위를 벌였다. 베를린 택시기사들도 택시를 몰고와 공항 택시 정책에 대해 시위를 벌였다. 공항 근교 지역 택시기사를 위해서 베를린 택시기사 300명만 공항에서 손님을 태울 수 있도록 결정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차피 손님이 많이 없다.

-베를린 신공항이 남긴 것은? Futur III (미래시제 3)

베를린 신공항이 조롱거리로 전락하면서 숱한 유머를 낳았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게 독일어에 새로운 시제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바로 푸투어 드라이, 미래시제 3이다.

Ich werde nächstes Jahr im Sommer nach Mallorca in den Urlaub geflogen wären gewesen.

굳이 해석하자면 ‘나는 내년 여름에 마요르카로 떠날 수 있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떠나지 못했지)’ 이 괴상한 어법은 자꾸만 미뤄지는 베를린 신공항 개항 일정으로 아마도 분명히 일어나지 않을 미래를 서술할 때 쓸 수 있다고 무려 언어학자가 설명하곤 했다.

-베를리너 밥벌이에는 도움이 될까?

물론 없는 것 보단 있는 게 좋을 것이다. 특히 한국 기업 대부분이 프랑크푸르트에 몰려있는 이유 중 하나는 베를린에 직항이 없기 때문이라는 말도 있다. 프랑크푸르트에 이미 경제와 활동 기반이 형성되어 있어 이 기업들이 베를린으로 오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동유럽에 진출해있는 기업들에게는 또 하나의 좋은 루트가 될 수 있겠다.

베를린 신공항이 생기면 대한항공이 직항 노선을 만들 수 있다고 밝힌 적이 있다. 수년 전이다. 국적 항공사에서 현재 일정을 검색해보면 BER 공항은 검색도 되지 않는다. (또르르) 무엇보다 코로나 시국이다. 코로나 시국이 끝난 이후 베를린 신공항의 활약을 기대해 본다.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일지도 몰라.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