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의 한국책 팝업스토어: K-BOOK IN BERLIN

베를린의 한국책 팝업스토어: K-BOOK IN BERLIN

한 나라의 문화가 다른 나라로 전달될 때 가장 늦게 도착하는 것이 책이다. 언어를 알지 못해도 느낄 수 있는 음악, 이미지와 영상으로 압도하는 영화와 드라마, 혀끝으로 바로 전해지는 음식. 하지만 흰 종이에 검은색 글씨만 쓰여진 책은 번역 없이는 접근이 불가능하다. 그것도 두 나라의 언어와 맥락을 모두 잘 이해하는 정교한 번역이 필요하다. 문학과 출판산업의 해외진출 장벽이 높은 이유다.

지난 7월 5일, 베를린에서 ‘케이북 인 베를린(K-Book in Berlin)’ 팝업 스토어가 문을 열었다. 3개월 동안 한국책을 소개하는 곳이다. 행사가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어 책에 목마른 현지 한국인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현지에서 반응을 살피고, 수요가 있는 책을 번역해 발행할 목적까지 품고 있는 장기 프로젝트다. 정부 지원을 받기는 했지만, 민간 차원에서 기획하고 실행에 옮긴 거의 최초의 한국 책방이다. 지난 5일 ‘K-Book in Berlin’ 오프닝 행사가 열린 베를린 예술 공간 아티스트 홈즈를 찾았다.

넓은 공간의 한쪽 변면 책장에 모두 한국 책으로 가득 차 있다. 조정래, 공지영의 소설, 류시화와 오기사의 에세이가 보인다. 볼로냐 국제도서전에서 수상한 그림책, 아동서와 문학, 경제경영, 자기계발서 등의 실용서부터 한국어 교육책도 소개하고 있다. 모든 책에 독일어 초록이 있어서 현지인들도 대략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다.

베를린 아티스트홈즈에서 열린 K-Book in Berlin 행사

팝업 전시장을 기획한 건 도서기획출판 M&K의 구모니카 대표. 한국에서 출판사를 운영하다가 현재 독일에 거주하고 있는 구 대표는 한국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현지에서 한국책을 소개할 기회를 엿보다가 드디어 첫 팝업스토어를 열게 됐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지원을 받았다. 구 대표는 “독일에서도 케이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케이팝을 넘어 지금 베를린에 한식당이 100개가 넘고, 드라마도 세계적 인기를 누리고, 최근에는 봉준호 감독의 칸 영화제 수상으로 한국영화에 큰 의미를 남겼다”면서 “그런데 왜 한국의 책은 세계 진출을 잘 못하고 있을까하는 아쉬움이 늘 있었고, 이제는 한국책이라고 생각하면서 행사를 기획했다”고 팝업스토어를 소개했다.

구 대표는 “이 행사는 한국책의 우수성을 알리고, 독일에 사는 사람들이 어떤 책을 읽고 싶어하는지 리서치하는 의미가 있다. 전시된 모든 책에 독일어 초록이 있고, 현지인들의 취향과 수요를 알아볼 계획”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3개월 간의 전시가 끝나면 좋은 한국책을 번역해 소개하고, 계속 한국책을 구매할 수 있는 서점도 운영할 계획이다.

베를린 한국책 팝업 전시장을 기획한 M&K 구모니카 대표

이 행사를 위해서 다양한 분야의 한국 도서 약 150여권을 선별했다. 구 대표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직까지 독일어 번역이 안 되어 있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 한국에서는 큰 인기를 누리는 자기계발서, 케이팝 붐을 타고 수요가 늘고 있는 한국어 교육서 등을 골랐다. 그간 출판업계에서 일해왔던 경험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취향을 더해 선정했다”고 밝혔다. 매주 주요 테마별로 진열을 조금씩 바꾸고, 다채로운 참여 행사로 방문객들을 끌어들일 예정이다. 책 낭동 행사, 한국어 수업, 한글 칼리그라피 행사, 남인숙 작가 초청 행사 등이 이어진다. ‘K-Book in Berlin’ 팝업 스토어가 자리잡은 아티스트 홈즈 또한 한국인이 운영하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주목을 받은 곳이다. 

독일에서 K-Pop과 한국음식은 이미 정부 차원의 진흥을 넘어섰다. 민간 기획자들과 사업자들이 뛰어들어 ‘산업’의 일부로 자리잡는 중이다. 책은 예외였다. 독일에서 한국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손꼽아 봤다. 독일 한국문화원에서 정기적으로 열리는 문학 대담, 매년 열리는 독일 도서박람회를 위해 ‘벼락치기’로 번역한 책들. 이제 한국의 범위를 넘어버린 한강 작가의 소설 정도가 눈에 띈다. 베를린에서 이제 막 문을 연 한국책 팝업스토어가 반가우면서, 행사가 끝나는 3개월 이후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D